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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_1] 낯선 유럽의 땅, 첫 발자국

공항 도착 및 현지 적응기

by Cosmo

'Welcome to London'이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눈을 떴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그런데 몸은 이미 도착한 지 오래된 피곤함 속에 있었다. 원래 자는 거 좋아하는 나조차 장시간 비행은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 같았다. 몸이 진짜 마비되는 것 같고 지루했다. 내가 탄 에어차이나의 기내 영화를 켜면 자막은 영어 아니면 중국어. 나한테는 두 언어 다 ‘관람 포기’ 자막이었다.

경유지인 중국의 호텔을 나서는 것부터 장기간 비행까지, 조금 과장하면 거의 하루(?) 동안 머리도 못 감고 그래서 몰골이 좀 피폐했다. 여행 전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 히드로 공항 입국 심사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무서워서 헝클어진 머리를 여권사진의 가르마 머리랑 똑같이 만들고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 거 없었다. 몇 마디 하더니 통과시켜 줬다. ㅋㅋㅋㅋㅋ

히드로 공항 착륙 모습



그렇게 진짜 유럽 땅을 밟았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여행이 아니라 생존게임이 시작됐다. 첫 번째 보스는 유심칩이었다. 하필 당시 나의 애정하는 똥폰인 <갤럭시 A7 2016>은 가성비 좋은 유심칩을 인식하지 못했다. (왜 돈을 줘도 받아먹지를 못하니ㅠㅠ) 시대가 어느 때인데 속도가 2G로 뜨더라;; 더 낮은 용량을 지닌 가성비 안 좋은 구식 모델로 해봤더니 그건 잘 작동되었다. 옆에 스웨덴에서 온 여행객은 아이폰이라 별 무리 없이 가성비 좋은 유심칩을 구매했다. 너무 간단하게 통과한 그분과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이 대비되어 슬펐다.

자, 이제 다음 보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지하철 역은 잘 찾았고 흑인 도우미에게 말을 걸어서 무사히 '오이스터 카드(=기간제 무제한 교통카드, 지금의 기후동행카드와 유사)'를 구매했다. 영국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엔 이상하게도 바람이 세게 불었다. 런던의 환영 인사인가, 시련인가 싶었다. 그런 바람에 당당히 맞서면서도 쫄보처럼 숙소를 향해 갔다.

처음 탄 영국 지하철


첫 번째 숙소인 런던의 호스텔로 향했다. 근처 지하철역 앞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머리 색이 다른 외국인들이라 너무나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나만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던 적이 대체 언제 있었던가... 처음은 항상 낯설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 짐 뺏어가면 어떡해… 나 지켜줄 사람 진짜 1도 없잖아…'

핸드폰을 소중히 꼭 쥐고 길을 찾아 첫 번째 숙소 체크인에 성공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게 매우 두려웠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첫 대화의 성공이 기쁘고 신기했다(오 이게 되네?). 그렇게 숙소에서 간단히 짐을 풀고 나갔다. 지금까지 내가 갔던 여행들과는 달랐다. 혼자였기에 그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나는 유일하게 검은 머리, 유일하게 입을 닫은 외계인 같았다. (혼밥 Lv.5 = 외국에서 혼밥) 4일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 이 환경이 점차 익숙해졌다.

어느 날은 버킹엄 궁전에 갔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소지품 도난방지에 신경 쓰면서 버스를 오르내리고 우산을 폈다 접었다 반복하다가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 상처는 작았지만 피가 흘렀다. 별 일도 아닌데 그 조그만 상처 하나에 속이 무너졌다. 그냥... 울고 싶었다. 너무 아프고 서럽고 일정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로 그냥 숙소로 돌아와서 약을 발랐다. 그 순간 이 작은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난 여유가 없었고 다 무서워만 했다.

버킹엄 궁전, 비가 오다말다 하는 날씨


그토록 기대했던 영국에 와서 신기함과 즐거움은 잠시 뿐이었고, 다시 생존 모드에 돌입해야 했다. 그렇지만 한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그다음 계단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하나씩 무섭지만 한 계단씩 이동한 것 같다.

19.05.10 (당시 작성한 메모)
영국 4일 차. 이제는 외국인 공포증은 사라지고 나름 평온하게 지낸다.
내 영어 실력 진짜 하찮구나...! 힘들긴 한데 그것 나름 재미지 뭐... 가끔은 이게 꿈인가 싶기도 한데, 나름 잘 지낸다. 뭔가 온 김에 모든 걸 다 봐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아직도 있긴 한데, 괜찮아 볼 수 있으면 보고 아님 말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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