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경험 | 나도 하면 되네?라는 무의식
2026학년도 수능이 코앞이다. 많은 감정이 들 때다.
"그놈의 수능이 도대체 뭐길래..."
그러나 수능을 본 지 10년도 넘은 지금 돌이켜보면,
수능에서 진짜 얻어가야 할 건 합격증이 아니라 어떤 '무의식'이었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게임, 수능
나는 원대한 목표에 비해 초라한 현실이 힘들었다. "사교육을 못 받아서..." 혹은 "우리 학교 선생님이..." 핑계는 수십 가지를 댈 수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기울어진 게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능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나마 평등한 게임에 속한다. 학교, EBS 같은 공식 헬퍼가 있고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룰이 동일하게 주어진다. “학교나 EBS가 무슨 도움이 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회인이 된 뒤, 이렇게 공식적으로 커리큘럼과 환경을 제공받고 공평하게 기회를 얻는 순간이 또 있을까? 어쩌면 이 정도의 평등함조차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다. ‘이 게임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진짜 불평등한 세상에서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한번 제대로 해볼 만큼은 해보자’
수능은 공부 실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15+12=27', 너무 쉬운 문제인가? 그러나 이를 다음의 상황에서 푼다고 상상해 보자.
평범하게 학교 책상에 앉아있는 경우
사막에서 3시간 동안 헤매다가 기력이 없는 경우
부모님이 아파서 항상 걱정에 잠긴 경우
집안 사정이 어려워 불화를 마주하여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
시험 당일 몸살이 나서 쓰러질 것 같은 경우
문제는 같아도 상황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누군가의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황적·심리적 컨디션을 만드는 것도 실력이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 그게 루틴이자 습관이자 일상의 디폴트다. 결국 수능은 단순히 문제풀이 능력만 보는 게 아니다. 최적의 상태를 만들고,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지켜내는지 그 자체까지가 시험의 일부다.
수능에서 진짜 얻어가야 할 것
나의 입시 합격 발표 소식을 들은 어느 친구가 내게 말했다. “정말 축하해. 너는 합격할 자격이 있어.” 이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붙은 대학은 세상이 놀랄 만큼 대단한 곳은 아니었다. 내 성적에 딱 맞거나, 약간 도전할 만한 수준이었다.
당시 나는 이런 생각으로 힘들었다: ‘SKY 대학이 아닌 사람들은 다 실패자인가? 1등급이 4%라면 나머지 96%는 실패자인가?’ 그런데 친구에게 저 말을 듣고는 기쁨은 당연하고 더 큰 감정이 따라왔다. 나의 지겹고 고독했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느낌. 내가 쏟은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보답의 감정.
그래서 나는 ‘수능을 잘 본다’의 정의를 ‘SKY 입학’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로 바꿨다. 컨디션 조절이든 공부의 양/질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결과를 받아들이자. 그게 나만의 기준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작더라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경험을 한다. “뭐야… 나도 하면 되네!?” 그 순간이 사람을 바꾼다. 자신감, 자존감, 그리고 가능성.
성인이 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그들은 입시에서 이미 이 감각을 한 번 맛봤기에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어렵겠지만, 하면 될 수도 있잖아.” 그 믿음을 기반으로 또 도전하고, 또 성공하며 자신감을 키워간다. 그게 바로 ‘성공경험의 힘’이다. 어쩌면 대학 간판보다도, 이 무의식이 젊은 청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진짜 엔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능 이후에도 살아간다
사실 첫 관문인 수능에서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경쟁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아픈 결과를 맞이한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알바 면접, 대학교 과제, 취업 시험…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시험대에 선다. 그때마다 “나는 하면 되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또다시 이겨낸다.
그걸 수능에서 느꼈든, 혹은 인생의 다른 무대에서 느꼈든 상관없다. 그 감각을 한 번이라도 느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건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은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수능을 보는 여러분, 설사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와도 너무 슬퍼만 하지는 말자.
수능이 종점이 아니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성공경험을 천천히 쌓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