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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석 Sep 30. 2020

비대면 추석

코로나, 너희들이 신종추원과 추원보본을 알리가 없다.

이번 추석 명절은 벌초를 포함한 성묘, 고향 방문 등의 이동을 자제하고 ‘집에서 쉬기’ 또는 '비대면 추석' 보내기를 보건복지부가 연일 홍보 중이다. 급기야 코로나가 우리의 고유 전통까지 바꾸자고 덤벼들었고 정부는 동조해야 하는 꼴이 되버렸다.     

 

추석에는 본능처럼 천리 먼길 마다하고 고향 부모님을 찾아간다. 밤새 막힌 길을 가서 차례만 지내고 다시 올라오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갔다. 가족들과 선물 꾸러미 양손에 들고 반가운 얼굴들을 본다.     


차례를 지내고 술잔이 오가면 시누이와 올케, 삼촌들이 양념처럼 싸움판이 벌어져도 그때뿐이다. 올라올 때는 고추 말림, 콩 등을 바리바리 싸주시는 보따리를 들고 온 길을 돌아간다.     


신종추원(愼終追遠), 

인간의 마지막인 특히 부모 장례를 극진히 하고 부모를 포함한 먼 조상까지 잊지 않고 추모하여 제사를 받든다는 말이다. 조상님에게 절하는 것을 두고 우상숭배까지 가는 것은 너무 나간 이야기다. 


서서 기도나 묵념을 하든지, 목례를 하거나 무릎 꿇어 절을 하는 것은 '예'의 사소한 표현방식 차이일 뿐이고 각 집안별로 내려온 문화와 전통에 따르는 일이 옳다고 본다.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가까운 사람을 잃고 추모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기독교 정신은 하느님에 대한 효로 시작하여 인간에게 향하는 것이고, 유교는 인간에 대한 효부터 시작하여 위로 나간다고 말씀하시었다. 


제사나 차례가 조상이 아닌 조상신을 받드는 행위로 취급되는 것은 공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억울할 일일 수 있다.     


갖은 음식을 정성 들여 차려 놓고 흡사 조상님들이 진짜 흠향( 歆饗, 제물을 받아서 그 기운을 먹음)하신다는 가정 하에 예(禮)를 올린다. 예가 마무리되면 문 앞까지 장손이나 손주가 배웅을 나간다. 


필자의 집에서는 2~3명이 나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단지 정문까지 모셔드린다. 물론 마지막에는 두 손 모아 깍듯이 목례를 드린다.     


그리고 왁자지껄 음복을 하면서 조상님들이 드시고 남긴 음식들을 새 상에 차려서 즐겁게 먹고 마신다. 어린이와 학생들의 노래와 태권도 시범 등 즉석 발표회가 열리면서 그동안 갈고닦은 저마다의 재능들을 뽐내며 가족들의 변화를 공유한다. 


마지막쯤에는 산소, 제사, 혼사, 돈 등 집안 문제로 목소리가 잠시 커지다가 흐지부지 행사가 끝나간다.     

2006년 추석 때,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님이 손녀와 필씨름하시는 모습, 손녀딸이 많이 밀리고 있다.

주방에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 며느리, 올케들이 손이 바쁘게 뒤 설거지가 동시에 종료된다. 헤어짐의 시간에는 각자 가져온 비누세트, 통조림 세트가 오가며 다시 친정으로 시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다 추석은 조상님을 핑계 삼아 가족이 만나고, 또 조상님 핑계로 차린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가족 간에 묵은 앙금을 풀고 다시 새 앙금을 만들면서 가족, 패밀리라는 끈을 동여매 계속 이어 간다.  


필자는 늘 연천에 있는 선산 성묘(省墓) 담당이다. 그래서 일찍 큰집을 나서는 편이다. 그런데 14년 이상을 키운 페키니즈 ‘봄비’를 선산 초입 단풍나무 밑에 오래전 포근히 묻어주었다. 산소를 오가며 생전 좋아한 삶은 달걀 두개를 까서 놓아주며 나누는 대화의 정감이  쏠쏠하게 좋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요란하게 해외여행 등을 하면서 나다니지 않고 단순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시대라 해도 부모님, 가족, 조상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자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 너희들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 인간을 흩어져야 사는 동물로 만들려 하여도 본 모습까지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이번 추석에도 조상의 덕을 생각하여 어떤 비대면 방식이던 차례에 정성을 다할 것이다.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追遠報本 祭祀必誠(추원보본, 제사 필성)하는 인간 본연의 삶을 이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2020. 9. 30.

큰돌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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