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를 읽고
그는 정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금빛 머리칼을 바람 속에 흔들었다.
「내가 아는 별에 얼굴이 시뻘건 어른이 살고 있어요. 그는 꽃 한 송이 향기를 맡은 적도 없고, 별 하나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구 한 사람 사랑해 본 적도 없어요. 덧셈밖에는 다른 일을 한 적이 없는 거야. 그러면서 하루 종일 아저씨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고요.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러고는 으스댄다고요.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건 버섯이야!」
「뭐라고?」
「버섯이야!」
수백만 또 수백만이 넘는 별들 속에 그런 종류로는 단 한 송이밖에 없는 꽃을 누군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기만해도 행복할 거야. <저 하늘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이렇게 혼자 말하겠지. 그런데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그에겐 모든 별들이 갑자기 꺼져 버리는 것 같을 거야! 그래도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여우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지. 나도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알 것 같아.」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것 같아⋯⋯.」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고, 닭들은 모두 그게 그거고, 사람들도 모두 그게 그거고, 그래서 난 좀 지겨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듯 환해질거야. 모든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발자국 소리를 나는 듣게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나를 땅속에 숨게 하지.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칼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밀은, 금빛이어서, 너를 생각나게 할 거야. 그래서 나는 밀밭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고⋯⋯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의례가 뭐야?」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어 있어.」어린 왕자는 다시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을 거야. 물론 멋 모르는 행인은 내 장미도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나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꽃이기 때문이야(나비가 되라고 두세 마리만 남겨 놓고.) 내가 불평을 들어 주고, 허풍을 들어 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 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이 내 장미이기 때문이야.」
아저씨네 별에 사는 사람들은,」어린 왕자가 말했다, 「정원 하나에 장미를 5천 송이나 가꾸고 있어⋯⋯. 그래도 거기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찾지는 못해⋯⋯.」
「찾지 못하지.」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물론이야.」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눈은 장님이야. 마음으로 찾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