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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May 13. 2023

내가 걷는 길

                      


“자신을 표현하는 두 개의 형용사를 찾아오세요!” 에세이 클럽의 과제이다. 나를 두 개의 형용사로 표현하기에는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나를 한 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다. 나는 나의 삶을 추동하는 가장 본질적인 단어를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20~30년 이상을 알고 지낸 친구, 동료와 내 아이들에게 <pescador>하면 생각나는 형용사 한 두 개를 이유와 함께 말해달라고 했다. 그들이 보내온 형용사는 순수한. 탐구적인. 꼼꼼한. 다정한. 강인한. 따스한. 더 나은. 열린. 배려하는. 맑은. 그들이 선택한 형용사는 나에게서 발현된 것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이런 표현들은 그들 가지고 있지 않기에 더 두드러지게 보일 수도 있고, 가지고 있기에 공감하며 동질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를 두 개의 형용사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선뜻 답을 보내준 지인들이 고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은 가정 선생님이셨다. 늘 옷을 예쁘게 잘 입으셨고 웃을 때 보이는 윗니 양쪽의 송곳니가 매력적이었다. 은근한 세련미를 갖춘 선생님을 보며 나중에 내 모습도 저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반에서 나는 24번이었고 앞뒤 번호의 친구들과 특별한 기억이 있다. 이 친구들은 교실에서 내 짝꿍이기도 하고 앞뒤로 앉았다. 교복 자율화가 된 후여서 헤어스타일도 자유로워져 지나치지 않으면 학생부에서 지적하지 않았다. 친구 선희는 앞머리에 핀컬 파마를 하고 가끔 쉬는 시간에 구르프를 말고 있기도 했다. 해숙은 뒷 머리를 조금 길게 한 커트 스타일이었다. 두 친구는 등교하자마자 또는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점심시간에는 각각 다른 반의 무리들과 어울렸다. 


해숙이와는 오후 자율학습시간에 가끔씩 운동장을 돌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때 나눈 첫 이야기는 학교에서 해숙이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집안의 배경과 함께 설명한 것이다. 내가 해숙이에 대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해숙이의 여린 마음을 느끼면서 그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볼 때면 늘 더 깊숙하게 친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해숙이는 자신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나에게 말했지만 선희에 대해서는 다른 친구들을 통해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저마다 각각 집안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들은 여러 가지 고민거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하교하는 길에 가끔씩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옷을 바꿔 입고  미팅하러 가거나 디스코텍에 가곤 했다.


© stephiime, 출처 Unsplash


2학년은 경주로 수학여행이 있는 학년이었다. 경주에서 신라 도읍지로서의 역사를 공부하기보다는 집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시간을 상상하면 경쾌했다. 여행지에서 걸을 때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떠는 학생들 때문에 선생님은 소리를 지르며 학생들을 인도하셨다. 어떤 학생들은 낮 시간의 견학보다 우리끼리 있을 밤의 시간을 더 기대했다. 그 시간만이 우리의 자유시간일 것이기에. 첫날 견학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 각자 정해진 방으로 들어갔다. 담임 선생님은 이부자리를 펴라 하시고 몇 가지 주의를 당부하고 숙소로 돌아가셨다.  


선생님이 가시고 우리는 게임을 하거나 수다 삼매경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어떤 수다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분명 바로 잠들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 방에 있는 모든 친구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불을 끄고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슨 일이 있을지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몇은 무릎걸음을 해서 한쪽으로 모였다. 내 주변으로 모인 것이다. 정확히는 선희와 해숙이 주변으로 모인 것이다. 그들은 베갯속에서 호기롭게 맥주를 꺼냈다. 방안에는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는.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멀찍이 앉아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어두운 방에서 컵도 없이 돌아가며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는. 그 흥분되고 긴장되면서 짜릿한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부 선생님의 등장으로 종료되었다.  


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불을 켜고 한쪽에 어울려 있는 학생들을 불러내셨다. 물론 나를 포함한 번호 앞뒤와 수학여행에서 짜릿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친구들 몇이었다. 우리는 방 밖으로 나가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학생부 선생님이 담임을 부르러 간 사이 친구들은 서로 입김을 불며 술 냄새가 나는지 확인을 했다. 곧 담임 선생님은 놀란 얼굴로 오셔서 우리를 보시고 어이없어하시면서 불같이 혼을 내셨다. 따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너마저도 하는 표정을 보이셨다. 나는 그날 술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나는 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술만 먹지 않았을 뿐 그들과 동조해서 함께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나만 먹지 않았다고 말하고 가면 친구들은 어떤 마음일지도 신경이 쓰였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손을 들고 벌을 받은 후 우린 잠자리에 들어갔다. 그다음 일정은 전날 못 잔 잠을 버스에서 자느라, 부모님께 이 사실이 알려져 혼이 날까 염려가 되어 수학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와 우린 교무실에 불려 갔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도 나를 보시고 ‘네가 왜?’하는 표정이셨다. 좋지 않은 일로 불려 가 서 있었던 나는 선생님을 뵙기가 참 민망했다. 선생님은 부모님께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벌로 우리에게 한 달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하셨다. 곧 있을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오른 사람은 화장실 청소를 면제해 주겠다고 하셨다. 벌을 받게 된 우리는 매일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등교해서 화장실을 청소했다. 시험은 다가오고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청소를 계속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지겹기도 했다. 성적이라는 것이 내가 공부를 하면 분명 오르긴 하겠지만 나는 공부보다는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나만 성적이 올랐으니 다른 친구들은 계속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하셨다. 친구들은 나 포함 5명 정도였으니 청소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불쾌하고 귀찮으며 수학여행에서 술 마시다 걸린 애들 이래. 이 정도의 낙인이 불편할 뿐.


나는 청소를 면제받았으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 성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성적이 올랐다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와 긴 편지를 썼다. 선생님이 전부터 내가 가끔 운동장을 돌며 해숙이와 얘기하는 것에 염려를 하고 계시다고 느껴졌었다. 나는 해숙이와 얘기하면서 그 아이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해숙이에 대해 변호도 했다. 또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베갯속에 술을 감출 때부터 알고 있었기에 함께 벌을 받았다는 것. 성적이 반성하는 마음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 편지글 말미는 친구들이 계속 청소를 해야 한다면 나도 같이 청소를 계속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등교해서 교무실의 담임 선생님 책상 위 초록 고무판 아래에 봉투가 살짝 보이도록 편지를 두고 나왔다. 청소하는 사람 때문에 편지가 전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이 기다려지기도,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조회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길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을 때는 앞을 바라볼 수 없었다. 당돌한 내 편지에 선생님이 화가 나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몇 가지 전달사항과 함께 친구들에게 더는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일로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불러서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1학년, 3학년 담임과도 친했던 선생님은 나란 아이를 선생님이 느끼신 대로 말씀을 하셨던 듯하다. 이후에 학교생활에서 선생님들이 보여주셨던 나에 대한 신뢰를 반추해 보면...


이 일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생각으로만 갖고 있지 않고 조용히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 스스로가 신뢰감을 갖게 된 일이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지금 내가 바른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는가? 나를 신뢰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아이러니이다. 점검이 필요하기에 여러 공부가 필요하다. 어린 제자가 쓴 편지를 진지하게 읽어주시고 수용해 주신 선생님 덕분이다. 


내향적인 성향이기에 드러나는 것.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동가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읽고 배운 것들에서 옳다고 생각하고 바른 방향이라면 묵묵하게 삶으로 살아 내려한다. 이것은 머리로만 사는 것보다 훨씬 큰 유익함이 있다. 나와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다면 작은 우주 하나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행성에서 내가 걷는 길이다.



대문사진 출처: © Joergelman, 출처 Pixabay © Joergelman, 사진출처©  Joergelman, 사진출처© Joergelman,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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