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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Jul 11. 2023

나의 위그든 아저씨

청해식당


어느 해 어린이날은 양장점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양장점 숙모가 희야와 놀고 있는 나와 내 친구에게 어린이날이니 함께 짜장면을 사 먹고 오라고 돈을 주셨다. 짜장면은 강진 큰댁에 갔을 때 큰아버지가 집으로 배달을 시켜주셔서 처음 먹어보았다. 엄마가 삼양라면을 별식처럼 끓여줄 때면 밥이나 칼국수와는 다른 색다른 맛이 좋았다. 4학년 때 강진에서 처음 먹었던 짜장면은 라면과는 다른 신박한 맛이었다. 까만 짜장소스를 끼얹은 짜장면은 맛이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는 식욕을 당겼다. 큰어머니가 젓가락으로 짜장소스와 면을 섞어주시면서 단무지는 반찬 삼아 먹는 거라 일러주셨다. 맵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이 표현할 수 없는 맛으로 나의 저작 운동을 빠르게 했다. 처음 먹는 짜장면의 맛은 색깔 고운 노란 단무지까지 그 조합이 환상적이었다.      


그 짜장면을 양장점 숙모가 사 먹으라고 하신다. 내가 궁금해하는 양옥집 ‘청해식당’에서.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 개량을 하면서 농촌과 산촌은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바꿨다. 이미 양철지붕이었던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양옥으로 바꾸면서 변화를 주고 있었다. 아침 일찍 만월장 할머니네 집으로 갓 만든 뜨끈뜨끈한 두부를 사러 갈 때는 ‘청해식당’ 앞을 지나야 했다. 그 시간 ‘청해식당’ 주인아저씨는 가게 앞을 비로 쓸고 있기도 했다. 엄마 말씀으로는 주인아저씨가 고향 사람이라는데 나에게는 여느 고향 사람들 같지 않게 느껴졌다. 얼굴도 희었고 친구들과 면사무소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놀고 있을 때 아이들이라고 쉽게 말을 걸거나 하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양옥집이란 이유와 함께 더 궁금했을 수도 있다.     


식당문을 옆으로 밀며 우리는 쭈뼛쭈뼛 수줍어하며 들어갔다. 식당에서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섬에서 식당이란 술을 파는 곳으로 가족이 갈만한 곳도 아니거니와 외식하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식당 안은 하얀색으로 칠해진 벽에 몇 개의 깨끗한 테이블이 있었고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일어나 안내한 쪽으로 앉았다. 아저씨는 벽에 있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무엇을 먹을지 물었다. 숙모가 주신 600원은 우리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시킬 수는 없어 모두 짜장면으로 정했다. 메뉴가 정해지자 아저씨는 보리차가 담긴 도자기 컵을 놓으시면서 우리가 몇 학년인지. 아빠가 누구인지 물으셨다. 주인아저씨는 키는 자그마하시고 얼굴은 희고 쌍꺼풀이 있었다. 나와 친구에게 묻는 말투도 투박하지 않고 우리의 말에 반응하시는 것도 점잖으셨다.   

  



짜장면이 나오고 아저씨는 희야 앞의 짜장면을 젓가락으로 짜장 소스와 면을 섞어주시면서 우리가 따라서하게 하셨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소스에 있는 감자, 양파, 돼지고기 등을 같이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면만 먹으면 맛이 덜하고 맛있는 양념만 나중에 남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만두를 서비스로 주시며 편안하게 먹으라 하시고 자리를 비켜주셨다. 아저씨와 얘기하는 동안 나는 동네 어린아이가 아니라 좀 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 가게에 들어섰을 때부터 보여준 친절함, 음식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다정함, 동네 아이들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않고 손님으로 응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딸이 중학생일 때 국어 교과서에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을 읽었다. 글에서 위그든 아저씨는 아직 돈의 개념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사탕 사러 와서 버찌씨를 주었을 때 거스름돈이라며 동전을 거슬러 준다. 그 아이는 성장해서 위그든 아저씨로부터 받았던 그 친절한 배려를 물고기를 사러 온 아이를 통해 되돌려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청해식당’ 아저씨의 얼굴이 그 글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아저씨는 짜장면 값 200원을 받으시고 덤으로 친절과 다정함을 나누어주셨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아이에게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거스름으로 주신 것이다. 어렸을 때 나도 위그든 아저씨의 배려와 존중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그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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