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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Mar 23. 2023

꽃상여 나가는 길

죽음이 보여주는 종합예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기약 없는 길이로세”

“어~ 너~ 어~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 너”

“한번 가면 다시 못 올 저승길로 나는 간다”

“어~ 너~ 어~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 너”


멀리서 상엿소리(만가)가 들려오면 구슬픈 음조가 좋았다. 속으로 상두꾼들의 뒷소리를 따라 부르면서 상여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했다. 섬에서는 초상이 나면 사람들이 모여 각자 맡은 일로 분주했다. 동네 아낙들은 음식을 만들고 삼베로 수의와 상복을 짓고 남자들은 종이꽃을 만들고 짚으로 상여줄을 꼬느라 분주했다. 상가에 엄마 심부름을 갔다가 상여에 장식할 꽃을 만드는 아저씨들을 보았다. 그들은 색깔이 있는 습자지를 여러 겹 겹쳐 오리고 묶고 펴면서 꽃을 만들었다. 종이꽃이 예뻐 지켜보는 나에게 “너도 한번 만들어볼래?” 하는 말에 부끄러워 그냥 나온 적이 있다. 누군가 돌아가셔서 슬프다는 생각은 없고 남자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몇 번 만지면 고운 종이꽃이 되는 것이 신기했다.


상여가 나갈 때면 상여 맨 앞에 명정과 공포가 앞서고 형형색색의 만장이 뒤따른다. 그 뒤는 상두꾼들이 고인을 모신 관을 얹은 꽃상여를 메고 있다. 노란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은 상제, 안상제, 그 뒤에 두건을 쓴 친척들, 고인을 애도하는 마을 사람들이 상여 뒤를 따랐다. 장터 앞에 살았던 나는 그 장터를 지나가는 긴 상여 행렬이 굉장히 특별하고 아름다운 행사처럼 느껴졌다. 상두꾼들이 힘이 들어 쉬어가야 할 때 넓은 장터는 잔칫집 마당이 되었다. 동네 아낙들이 만든 나무 도시락을 상두꾼, 고인의 가족들, 동네 사람들이 나눠 먹었다. 더러는 아이들에게도 돼지고기, 생선, 전, 고춧가루에 버무린 노란 단무지가 든 나무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사랑하는 자식 두고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어~ 너~ 어~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 너”

“일가친척 많다 한들 어느 누가 대신 갈까”

“어~ 너~ 어~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 너”


꽃상여는 상두꾼 여러 명이 상여 좌우와 앞뒤에서 어깨에 멨다. 선소리꾼이 상여의 맨 앞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애처로운 소리를 메기면 상두꾼들이 앞소리를 받아 뒷소리 합창을 했다. 앞소리꾼의 애절한 목소리에 뒤를 따르는 안상제들은 대성통곡하며 더욱더 슬피 울었다.




수많은 하얀, 노란, 빨간 종이꽃들이 상여 층층이 빙 둘러 울긋불긋 피었다. 선소리꾼의 선창에 상두꾼들은 앞으로 몇 발자국 간다. 바로 이어 상두꾼들은 처량한 뒷소리를 하며 뒷걸음을 한다. 상두꾼들의 느리며 흔들리는 듯한 걸음걸이와 뒤로 젖혀진 상체의 몸짓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나로 일치할 수 있는지. 아름다운 군무였다. 남겨진 남편, 아내, 자식들과 헤어짐의 비통함. 더 살지 못한 삶에 대한 설움. 저승으로 향하는 고인의 무거운 발걸음을 뒷걸음으로 반복하며 표현한 것이다. 그 애달픈 군무는 간곡하고 눈물겨웠다.


“처자식을 집에 두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

“어~ 너~ 어~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 너”

“노자라도 보태주면 고맙고도 고마울 세”

“어~ 너~ 어~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 너”


상여가 장지로 가는 도중 앞소리꾼과 상두꾼이 상제의 친척과 그 가족, 친구들을 상대로 망인의 노잣돈을 우려내기도 한다. 육지에서 출세를 했거나 돈벌이가 좋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노잣돈을 받기 위해 상두꾼이 흥정을 한다. 상여 위에 올라간 사람은 더 못 내겠다. 상여꾼들은 더 내지 않으면 내려주지 않겠다. 실랑이하다가 노잣돈을 상여줄에 두둑이 꽂아 드리면 앞으로 몇 발자국을 가서 내려준다. 상두꾼들은 상여 위에 올라탄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무거운 상여를 메는 힘듦을 잊고 상여는 장지를 향해 간다.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상두꾼들이 상제의 친척들과 노잣돈을 흥정하는 모습은 상엿소리의 구슬픈 가락과 함께 한판의 잔치였다.


아들을 먼저 보낸 이웃집 할머니도 출세한 아들을 둔 사람도 똑같은 꽃상여를 탔다. 태어나면 누구나 기어이 가게 되는 길. 가는 길과 타고 가는 교통편도 같은 것이었다. 꽃상여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교통수단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어릴 적 보았던 꽃상여가 생각이 났다. 한 세상 사느라 애쓰신 아빠를 화려한 꽃상여에 모시고 싶었다. 고향의 친구들이 상두꾼이 되어 저승 가는 노잣돈을 흥정하면서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게 아빠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면... 


작년 추석에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태어난 곳 청산도에 다녀왔다. 산소에 참배를 하고 비석을 읽으며 고인들의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엄마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외가의 조상님이 계신 곳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의 유전자에도 청산의 정서와 향기가 스며들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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