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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Jun 04. 2023

물동이를 이고

하고 싶은 것은 해봐야지


어린아이가 양철 물동이를 이고 비틀비틀 걷는다. 앞으로 바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주춤주춤. 멈췄다가 다시 걸음을 내디뎌보지만 뒤에서 누군가 물동이를 잡아당기는 듯했다. 엄마 물동이에 1/3 정도 담은 물의 출렁거림이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했다. 볼 때와는 다르게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로는 걷기가 힘들었다. 괜한 짓을 했다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내 우스운 걸음걸이에 사람들이 웃을 것 같아 콧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집이 코 앞인데 10리는 된 듯했다. 이웃집 언니들이 물동이를 인체로 수다를 떨면서 걷던 것이 부러워 엄마가 계시지 않은 사이 엄마 물동이로 흉내를 내본 것이다. 집에 와서는 물동이를 혼자 내릴 수 없어 옆집 아주머니 도움으로 물동이를 내렸다. 어릴 때 엄마는 내가 하는 것들을 좀처럼 반대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물을 길어오는 것, 호야등의 유리를 닦는 것, 바지락을 캐는 것 등은 쉽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반대한다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나도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물동이를 이고 넘어져 다칠 것을 염려하셨던 엄마는 어린이용 양철 물동이를 사주셨다. 어른용보다 작고 훨씬 가벼웠다. 손잡이도 내 키에 적당했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는 출렁임이 없어 내가 걷은 것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물이 필요하면 아무 때나 큰샘에서 물을 기를 수 있었다. 샘의 크기가 커서 이름이 큰샘인 샘은 가뭄이 들면 문을 잠겄다가 아침과 저녁을 짓기 전에 시간에 맞춰 두번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밤부터 샘 앞에 물동이들을 줄지어 세워놓는다. 새벽에 샘문을 여는 시간이면 물동이 옆에 서서 엄마와 차례를 기다렸다. 밤새 고인 물이 가득하니 두레박질 세 번이면 내 물동이는 가득 찼다. 가뭄 때는 나도 한 역할을 하게 되어 마음이 뿌듯했다.      



내 물동이가 생기고 혼자 물을 길으러 갈 때면 샘을 내려다보며 구석구석 보았다. 샘의 돌에 낀 검푸른 이끼, 바닥을 보일 때면 바닥의 돌 모양과 크기, 눕혀진 상태 등. 큰샘은 그 이름답게 컸으며 그곳에 빠지면 혼자서는 절대 올라올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이 많을 때 두레박에 가득 찬 물의 무게 때문에 내가 샘으로 딸려 들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면 내 몸을 뒤로 한껏 젖히며 두레박을 들어 올렸다. 실수로 내가 샘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상도 했다. ‘샘에서 헤엄을 치고 있으면 지치니까 샘 모퉁이를 의지해 기다리다가 사람이 오면 꺼내달라고 해야지...’ 그래도 물이 많을 때는 그런 상상이 나쁘지 않았다. 물에서 헤엄을 칠 수 있으니 빠지더라도 죽지는 않을 것이기에. 샘은 가뭄이 아닐 때라도 낮에는 물이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사각형 모양의 우물에서 물이 조금이라도 더 고여있는 쪽으로 가서 두레박을 내린다. 물이 없을 때는 군인이 쓰던 철모 두레박이 안성맞춤이다. 새것보다는 오래 사용하여 닳아야 바닥에 고인 물을 잘 훑어 올릴 수 있었다. 없는 물을 훑어 물동이를 채우고 집의 물독에 물이 가득해지면 마음도 뿌듯하면서 넉넉해졌다. 시켜서 하는 일이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샘에서 길러온 물은 식사준비를 하고 씻고 목욕하고 양치하는 데 사용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기 전에 하는 일은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한 다음 호야등의 유리를 씻는 일이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사용하던 등잔의 유리를 씻는 것은 아빠의 일이었다. 내가 하겠다고 졸라서 처음 씻게 되었을 때는 물동이를 이는 것보다 더 큰 긴장감이 있었다. 미끄러워 손에서 놓치면 유리등이 깨지고 손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밤 동안 그을음이 까맣게 끼인 유리를 몸체에서 꺼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손의 압력을 조정하며 유리를 조심조심 꺼내 세숫대야 옆에 세워둔다. 세수를 하고 나면 그 물을 버리지 않고 유리를 닦는 데 써야 했다. 먼저 유리에 물을 넣어 적시면 짙은 그을음이 덩어리로 흘러나온다. 그물 수세미에 거품이 잔뜩 일게 한 다음 유리 안에 넣고 그 양끝을 손바닥으로 막고 팔을 흔든다. 그물이 그 안에서 움직이며 옅은 그을음을 닦아냈다. 다시 깨끗한 물로 헹궈 그을음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한 유리를 보면 내 마음도 맑아졌다. 아침의 수고로 깨끗해진 호야등의 힘은 저녁 시간에 나타났다. 아빠가 심지 끝을 잘라 그을음이 없어 불빛이 더 예쁘고 밝았다. 저녁을 먹고 호야등 아래서 국민교육헌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외웠다. 돈부 과자를 먹으며 아빠가 사다 주신 책들을 읽었다. 호야등의 타오르는 밝은 불을 보고 있을 때면 내가 빛을 가져온 사람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특정 연령대의 내 행동을 아이들을 통해 돌아보곤 했다. 환경은 달랐지만 어떤 것들은 내 아이에게도 허락하기 쉽지 않을 것들을 고집하기도 했고, 당연하게 표현했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체득한 것의 넓고 깊음을 생각했다. 물동이에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은 보이지 않은 많은 디테일한 과정들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모두 설명으로 될 수 없으며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생각과 느낌은 행위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누구도 대신 줄 수 없다. 엄격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양육 방식은 젊은시절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찾아가는 여정을 어렵지 않게 해주었었다.

 


철모 두레박: 철모 속에 든 동그란 모자

호야: 향로나 작은 화로 등의 뚜껑을 뜻하는 일본어     


대문사진<네이버 블로그>푸른솔(spa7981)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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