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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Apr 16. 2023

성탄절에 핀 봉선화

크리스마스이브        


교회에 대한 첫 기억은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이다. 유치원은 교회 전도사님 내외분이 운영하셨고 나는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의 위치는 산 중턱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있어 마을을 내려 다 볼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초등부는 부모님과 예배를 같이 드리고 중등부는 따로 예배를 드렸다.     

초등부가 부모님과 분리되어 모임을 할 때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준비를 할 때뿐이었다. 매해 성탄절에 강대상을 치우고 만든 무대 위에서 나는 친구들과 무용을 했다. 성탄절에 하는 무용은 찬송가를 가지고 하지만 딱 한 곡은 찬송가가 아니었다. 그 곡은 홍난파 선생님이 작곡한 ‘봉선화’로 어린 나에게는 성극보다 더 주된 공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6학년이 되면 꼭 이 곡으로 무용을 하고 싶었다.     


1978년 성탄절은 나에게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 허용되는 날이었다. 엄마는 리허설에 늦지 않도록 나와 동생의 의상을 준비하고 나만 먼저 미용실로 데리고 가셨다. 교회 가는 길 양쪽으로 미용실이 있는데 오른쪽은 외지에서 온 세련된 원장이, 왼쪽은 고향 사람이 운영하는 미용실이었다. 오른쪽 미용실은 양장점 옆에 있으면서 주로 섬의 젊은 사람과 주점의 색시들이 다니는 곳이다. 엄마는 나를 오른쪽 미용실로 데리고 가셨다. 저녁까지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미용실은 한가했다. 엄마는 원장에게 내가 하게 될 무용을 설명하고 고데를 예쁘게 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고데를 시켜준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지만 미용실에 오니 마음이 흔들렸다. ‘고데를 하면 더 예쁠까?’, ‘이상하지 않을까?’, ‘친구들이 보고 놀리지는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원장은 나에게 미용실 의자에 앉게 하고 석유풍로를 내 가까이 가지고 왔다. 두께가 다른 고데기 세 개를 곤로 위에 놓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석유 냄새가 미용실 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젖은 가제 손수건을 접어 석유풍로 둘레에 두었다. 양장점에 놀러 갔을 때 미용실을 들여다보면 주점의 언니들이 고데하는 모습을 종종 봐왔지만 내가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뜨거운 고데기가 ‘내 머리카락을 다 태우면 어떡하지?’, ‘내 귀에 닿아서 화상을 입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내 어깨는 자꾸만 귀를 만나러 갔다.      


원장은 나에게 오늘 예쁜 봉선화가 되게 해 주겠다며 컷트보를 둘러 뒤에서 집게로 집었다. 직사각 모양으로 잘린 한지가 말린 채로 담겨있는 바구니를 내 무릎 위에 놓았다. 머리를 말 때마다 한지를 펴서 한 장씩 원장에게 달라고 하면서. 한지는 옅은 베이지색인데 열이 가해지면서 색이 바래 황토색인 부분도 있었다. 한지를 잘 펴서 원장의 속도에 맞춰서 줘야 하는데 늦어지면 어쩌지? 괜한 부담감이 있었다. '하나님 내 머리가 이상하지 않고 이쁘게 나오게 해 주세요.'      


원장은 의자를 낮춰 앉고 한지 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차곡차곡 하나씩 펴고 있다가 원장의 손에 한지를 쥐여주면 된다. 원장은 고데기를 들어 코 가까이 가져가 열을 체크하고 나는 처음 하는 고데가 잘 나올지, 한지를 적당한 때에 잘 줄 수 있을지 긴장이 되었다. 원장은 빗 꽁지로 머리카락 조금을 잡아 빗질을 한 다음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에 한지를 들려준다. 한지는 내 머리카락을 감싸고 원장은 고데기를 들어 코 가까이 가져갔다가 한지와 함께 있는 내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준다. 한지에 열이 가해지면서 약하게 종이 타는 냄새와 머리카락이 익는 약한 냄새가 섞인다. 고데기가 너무 뜨거우면 젖은 가제 수건에 한 번 문지르며 식힌 다음 머리를 말고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첫 번째 한지를 속도에 맞춰 잘 전달한 나는 부지런히 한지를 펴 놓고 원장의 손놀림을 지켜본다. 원장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서다. 굵은 고데기가 입을 떡 벌렸다가 닫힐 때는 혹시 한지에 싸이지 않은 내 머리카락이 다 타버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다. 원장은 어린애가 머리숱이 많다고 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원장이 고데기로 머리를 다 말고 나니 내 머리에는 베이지색 큰 소라고둥이 층층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파마도 해본 적이 없기에 고데가 끝난 내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원장은 시간에 맞춰 한지를 쓱쓱 빼내면서 이쁘게 해 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지가 빠진 내 모습은 머리카락이 껑충 올라가 있어 촌스러웠다. ‘이게 뭐야!!’ 울고 싶었다. 이마를 살짝 가리며 비스듬히 예뻤던 앞머리는 없고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기 싫었다. ‘하지 말걸’ 후회스러웠다. ‘창피해서 교회에 어떻게 가지...’ 곧 원장의 빗질로 머리 스타일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마무리까지 했는데도 몸과 얼굴이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지금은 어색하지만 ‘봉선화’ 의상과 어울릴 것도 같았다. 원장이 엄마와 얘기를 나누더니 엄마의 파운데이션을 약하게 바른 얼굴에 붉은색 립스틱을 발라주었다. 거울을 보니 조금 전 보다 나아 보여 다행이었다. ‘립스틱이 지워지면 어떡하지!’ 나는 립스틱을 바른 후 침을 잘 삼킬 수가 없었다. 립스틱이 지워질까 걱정이 되어 입을 약간 벌린 채로 약하게 ‘스스’ 소리를 내며 있었다.

      

교회에 가서 리허설이 끝나고 짧은 식사시간이 지나면 공연이 시작된다. 그동안의 연습은 오늘 밤을 위한 것이었고 연습하는 내내 이 축제의 날을 기다려 왔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은 쿵쾅거렸다. 동작의 순서를 헷갈리지는 않을까. 다음 무용에 맞춰 옷을 잘 바꿔 입을 수 있을까. 공연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하늘하늘 한 흰 블라우스와 다홍색 치마에 하얀 스타킹을 신은 나는 불 꺼진 무대 위로 나갔다. 친구와 무대 중심에 앉아 두 다리를 뻗고 두 발을 서로 마주하여 붙이고 머리가 무릎에 닿게 상체를 수그리고 있었다. 커튼이 열릴 때까지 순서를 기억하며 더듬어 보았다.      

© mikeralphcreative, 출처 Unsplash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이제야 엄마가 보였다. 가운데 막냇동생을 데리고 앉아 계셨다. 큰집 사촌오빠도 왔다. 친구 엄마도 보인다.)      

연습하는 동안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하지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무대에서 넘어지면 나만 창피한 것이 아니라 무용도 엉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집과 교회에서 서서 상체를 뒤로 젖히는 연습을 했다. 본 무대에서 뒤로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안도감에 감사했다. 6학년이 되기 전부터 이 무용을 하고 싶었던 것은 가사와 곡의 처량함과 함께 선배 언니들의 느릿한 몸짓으로 ‘봉선화’를 표현하는 것이 어린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6학년이 되어 이 배역을 맡았을 때 선생님은 곡의 역사적인 배경을 말씀해 주셨다. 어렸지만 연습을 할 때에도 나는 처연한 마음으로 임했다. 지금도 하늘거리는 하얀 블라우스에 다홍색 치마, 하얀 스타킹의 ‘봉선화’ 두 송이가 눈에 선하다. 



대문 이미지 출처: © mariana42,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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