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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Apr 23. 2023

밥 좀 주세요!!

정월대보름 농악대


“정제 구석 마래 구석 잡귀 잡귀 쳐내세” 

꽹과리를 치며 가락을 넣은 상쇠의 입말이 끝난다. 

부엌을 둘러싸고 있는 농악대들은 상쇠의 신호에 맞춰 자신의 악기를 신명 나게 두드린다.      


“갠지갠지 갠지갠지 개갱 갠지 갠지갠지 ~~”

”둥둥 둥다둥다 두두둥둥 둥다둥다~~“

”동동 동다 동따동따 동따동다 도동동동~~“

“징~~ 징~~”     


농악대는 하얀 저고리에 빨강, 노랑, 파랑 띠를 두르고 손에는 각자 꽹과리, 북, 장고, 징, 소고 등을 들고 있었다. 꽹과리는 긴 꼬리가 달린 상모를 썼다. 나머지는 빨강, 노랑, 하양 습자지 종이꽃을 단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상쇠는 부엌을 돌고 나와 앞장서서 허청과 마당을 돌며 농악대를 이끌고 옆집으로 옮겨간다.     


 설부터 5일간은 어른도 아이도 쉬는 날이다. 설을 쇠고 음력 정월 5일까지 농악대는 마을의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놀이를 한다. 지난해의 묵은 때를 벗기고 좋은 기운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귀신을 쫓는 풍습이다. 집주인은 자신의 집 순서가 되면 문을 활짝 열고 반갑게 맞이한다. 동네 꼬마들은 신이 나서 농악대 뒤를 따라다닌다. 상쇠가 꽹과리로 신호하며 “정제 구석 마래 구석 잡귀 잡귀 쳐내세”하면 아이들도 따라 한다. 수줍음 많던 나는 속으로 따라 부른다. 상쇠의 꽹과리 신호에 모든 악기의 시작과 끝이 있었다. 상쇠의 카리스마가 멋졌다.     


정초에 농악대는 낮 동안 가가호호 방문하고 밤에는 동네의 여유 있는 사람의 집에서 한바탕 흥겹게 논다. 마당 가운데 핀 장작불은 환한 조명이 된다. 꽹과리를 치는 사람들의 상모 돌리기가 가장 멋질 때이다. 상쇠의 꽹과리 신호에 상모 돌리기를 시작하면 뒤의 쇠치배들도 함께 한다. 고개를 앞, 뒤로, 좌, 우로 돌리며 꽹과리를 치는 모습은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도록 흥을 돋운다. 그중 젊은 사람은 상모를 돌리며 재주까지 부린다. 국악한마당이 따로 없다. 모두 농악대의 공연에 빠져있을 무렵 주인은 닭을 잡아 죽을 쑤어서 옹기 동이에 내놓는다. 한바탕 흥겹게 논 농악대와 구경꾼들은 주인의 온정이 담긴 죽으로 허기를 달랜다. 정초에 농악대가 방문하지 못한 집은 정월 대보름에 청할 수 있었다.      


설이 지나면 정월 대보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보름날 밤에는 저녁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은 이웃집에서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밥을 얻어왔다. 얻어온 밥을 다음 날 아침에 먹으면 그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는 풍습 때문이다. 어느 해 처음으로 밥을 얻으러 고모네 집으로 갔다. 고모네는 여인숙을 했기에 안채와 별채가 따로 있고 우물이 있는 마당이 넣은 집이었다. 대문과 안방까지의 거리도 멀었다. 대문을 두드리며 “밥 좀 주세요!”라고 외쳤다. 반응이 없자 다시 “밥 좀 주세요!”라고 외쳤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창피한 마음이 들어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밥 좀 주세요!”라고 외쳤다. 곧 고모가 나오시며 “오마야 내 조카야!!”하시며 너무 잘 왔다고 반기시고 밥을 양푼에 담아주셨다. 고모의 그 짧은 말과 행동에서 조금 전 초라함이 느껴졌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얻은 밥을 집에 가져다 놓고 한바탕 놀 준비를 하는 집 앞 장터로 나갔다.


                                           


전기도 없는 섬의 정월 대보름날 밤하늘의 달은 휘영청 밝았다. 너른 장터 한가운데서 어둠을 태우며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은 희망이었다. 갇혀 있지 않고 타는 불은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농악대의 몸짓에도 흔들리는 가벼운 불길이지만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는 불이 좋았다    

 

멀리서부터 농악대가 오고 있는 반가운 소리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대 중앙의 모닥불은 더 크게 활활 타오르고 농악대의 화려한 등장에 어린아이들의 시선이 고정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쇠의 꽹과리 신호와 함께 농악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두어 번 다른 가락으로 연주를 하고 각각 악기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상쇠는 앞뒤 좌우로 상모를 돌리면서 꽹과리를 친다. 몸을 낮춰 상모를 돌리며 긴 줄을 사뿐사뿐 뛰어넘는다. 꽹과리의 장단에 맞춰 동네 아이들도 머리를 앞뒤로 끄덕이고 좌우로 돌린다. 상쇠의 몸짓은 아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곡예였다. “둥둥 둥기둥” 수북을 선두로 북이 등장한다. 북장단에 다리와 몸도 박자를 맞추며 뛰는 듯이 북을 친다. 꽹과리의 고음이 흥분시킨 관객의 마음을 차분한 북소리가 가라앉힌다. 북을 치는 사람들은 제 흥에 겨워 모닥불 주위를 돌면서 덩실대며 북을 친다.           


이때 허리 잘록한 장구가 가늘고 맑은 소리와 함께 수줍게 등장한다. 섬에서 장구와 소고는 여성의 악기 인양 여자들 차지였다. 동여맨 허리에 비스듬히 장구를 매고 장구채로 복판, 열판, 변죽을 치면서 내는 소리는 곱고 맑았다. 빠르게 제자리를 돌면서 장구를 치는 모습은 여성의 신체와 장구의 모양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었다. 각 악기들의 공연이 끝나면 농악대 전체는 신명 나게 판을 벌인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앞으로 나가 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춘다. 먼저 나간 사람은 아는 이를 무대로 끌어들인다.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이 모닥불 밖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돈다. 이에 흥이 난 아이들도 하나둘 끼어든다. 모두 하나가 되어 큰 원을 그리며 돌면서 흥겹게 대보름 밤을 즐긴다. 농악대는 마지막으로 신명 난 한판을 벌이고 상쇠를 선두로 사라진다. 모닥불은 작아지고 배우들이 사라진 무대는 적막하고 쓸쓸했다. 가까이 사는 꼬마들만이 작은 불 주위에 앉아 모닥불이 사위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답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둥글고 밝은 달이 나와 친구들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정제: 부엌의 전라도 사투리

마래: 마루의 방언

허청: 광의 전라도 방언. 마른풀이나 퇴비등을 보관하는 곳으로도 쓰임          



이미지 출처: 영상역사관 한국소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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