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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Apr 10. 2023

도둑은 향기를 남긴다

밀감서리    


“가시낙년들이 밀감을 얼마나 먹었기에...” 

친구 엄마가 이불을 덮어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친구 엄마가 나가실 때까지 모두가 잠자는 척하고 있어야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시험을 앞두고 친구네 집에 모여 함께 공부하곤 했다. 우리는 공부하면서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을 서로 묻고 답하고 했다. 이 방법은 같이 공부하는 재미도 있으면서 공부가 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다른 과목들은 어렵지 않은데 지리 과목은 낯선 나라 이름과 위치를 동시에 외우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나름대로 연구하면서 유럽은 주요 나라 외에는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반도, 이베리아 반도 등을 먼저 위치와 함께 살피고 주변 나라를 외웠다.


여중생들이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모였지만 공부만 열심히 하겠는가!! 그 당시 우리는 공부보다 수다를 떠는데 더 열심이었다. 중간중간 친구 험담도 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인지라 호감 가는 남학생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남의 연애는 왜 그리 흥미진진 한지... 학교 선생님들이 썸을 타는 이야기, 다른 동네 친구들의 연애담 등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우리가 이런 수다를 맘껏 할 수 있는 것은 미영이 부모님의 방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오실 것을 염려하여 한쪽 귀는 바깥을 향해 쫑긋하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일제히 자리를 잡고 공부 모드로 들어갔다.


그날도 나와 미영이 다른 친구 셋 모두 다섯 명이 함께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호기심 많고 행동 성향이 강한 한 친구가 밀감 서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초등학교 가는 큰길 오른편에 밀감 밭이 있었다. 그 밭주인은 그 당시 면장이었고 면장의 부인은 사납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아직 밀감이 익지도 않았거니와 밀감밭 맞은편은 친구 집과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사택도 있었다. 큰 길가이기에 사람들한테 들킬 염려도 컸다. 나는 이런 이유를 들어 반대를 했지만 1명의 힘은 약했다. 겁을 상실한 사춘기 여학생들은 그날 밤 자정 이후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니 밀감을 담을 무엇도 준비되지 않았다. 각자 공부할 책을 담아 온 보조 가방을 비워내고 미영이 엄마가 우리가 자는 것을 확인하러 오신 다음 나가기로 했다. 12시가 넘어 우리는 보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발소리를 죽이며 미영이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 앞을 지나갔다. 밤이라서 거리에 사람들은 없었다. 그 시간에 내가 밤길을 걷는 것은 크리스마스에 새벽 송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큰길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달빛과 함께 밤이 너무 고요해서 우리의 발걸음과 소곤대는 소리조차 울리는 듯했다.




선창가에서 양조장까지는 큰길로 좌우에 가게, 약방, 술집, 식당, 여관 등등이 즐비해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그곳을 잘 통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곳에서 만약 어른을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다음날 누구누구 딸들이 12시 넘어 다니더라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정말 이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혹 이 소문이 중학교 학생부장인 체육 선생님한테 들어갔다가는 우린 단체 기합은 물론이고 어떤 후속 조치가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천만 다행히도 그곳을 무사히 통과하면서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밀감밭 앞이다. 온통 시커먼 나무들이 서 있는 밭에서 우린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우리 다섯의 부모님은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밭일에 대해서는 아는 이도 없었다. 미리 계획했다면 어느 쪽의 밀감이 더 여문 것인지 눈여겨보기라도 했을 텐데. 밀감 서리를 하자고 작당을 하고도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길가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길에서 보이지 않아야 하고 초등 선생님들이 계시는 사택에서 보더라도 눈에 띄지 않아야 하니 밀감나무가 나를 가릴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둠에 눈이 익고 나니 왜 이리 달은 밝은지. 밀감나무 잎은 어찌 그리 반짝이는지 내 얼굴이 반사되어 눈에 띌 것만 같고 밀감 따는 것이 다 보일 것만 같아 불안했다.


밀감을 따본 적이 없으니 밀감을 따기 위해 가위가 필요한지도 몰랐다. 가지는 손으로 잘 꺾어지지 않아 쉽지 않았다. 쉽게 꺾이지 않는 가지를 좌우로 돌려가며 밀감을 땄다. 각자 흩어져 밀감을 따던 우리는 어느 정도 양이 되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밀감이 든 가방까지 메고 들키면 정말 도둑이 되는지라 심장은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길에 밀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가방을 잘 여미며 걸었다. 다행히 우리는 사람들과 마주침 없이 큰길을 무사히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가방에서 꺼낸 밀감으로 방은 밀감 냄새가 진동했다. 한데 모으니 생각보다 많은 양이어서 놀랐고 시어서 먹기도 힘든 초록 밀감이어서 실망했다. 서리한 밀감을 학교에 가지고 갈 수도 없기에 미영이네 집 서랍에 나누어 넣었다. 우리는 조금만 자고 마을 사람들이 깨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길에 떨어진 밀감이 있는지 살피기로 했다. 나름 머리 써 완전범죄를 꿈꾸면서.


다음날 밭주인이 누군가 밀감 서리 한 흔적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소문 날 것이 궁금했고 걱정되었다. 그러나 밀감밭에 대한 소문은 돌지 않고 시간이 지나갔다. 우리는 시험 기간 내내 신 밀감 향기가 가득한 방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서랍에 있는 밀감을 보신 어머니의 추궁에 미영이는 밀감 서리 사실을 이실직고하였고 우리는 단체로 혼이 났다. 그 후부터 미영이네 집에서 공부할 때면 미영이 어머니의 감시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밀감 서리를 주도한 친구가 제일 먼저 서울로 전학을 갔다. 미영이와 나 그 친구는 몇 년 후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작당하기에 서울은 너무 넓었고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 없었다. 고1이 된 우리는 자신들의 성격에 맞게 서울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어릴 때 모습과 달라진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친구들이 있었고 각자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은 잠시이고 그때 느꼈던 거리감은 서운함과 더불어 어릴 적 친구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도 함께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친구가 있었기에 밀감 서리와 같은 사건을 추억으로 갖게 되었다. 고향에서의 가장 스릴 있고 긴장감 있는 기억이다.



이미지 출처 : © mac231, 출처 Pixabay© mac231, 출처 Pixabay© mac231, 출처 Pixabay© mac231,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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