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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Apr 15. 2023

비 오는 날에는 춤을

천창이 있는 방           

“엄마 비가 와도 데리러 오지 마세요.”      

“그럼 우산을 미리 가져가야지.”     

“괜찮아, 난 비 맞는 것이 좋아!!”     

“그럼 공원 한 바퀴만 돌고 들어와야 한다.”     

“응.”     


딸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도 우산 없이 책가방을 메고 등교한다. 단지 내에 아이의 학교가 있는데 비가 오는 날은 학교 앞 공원을 빙 둘러 집까지 오는 거리를 멀게 잡는다. 비가 몸에 닿는 느낌이 좋다며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맞는다. 저학년 때는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빗길을 함께 걸으며 우산과 땅과 나뭇잎 등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4학년 경부터는 아이가 원하는 날은 비를 맞게 두었다. 나 또한 비 맞는 것을 좋아했었기에...          


초등학생 때 비가 오는 날은 하교 후 밖에서 가방만 방으로 던지고 슬리퍼로 바꿔 신은 채 우산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비 오는 날 오가는 사람 없는 집 앞 큰길은 나와 동생의 무대였다. 춤을 추듯 빠른 스텝으로 내달리다가 멈추고 하늘을 향하는 얼굴. 눈을 감고 입을 벌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담는.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다 멈추며 비틀거리던. 아무 걱정 없이 비 오는 그 시간을 즐겼던 내가 떠오른다.   

        

몸이 비에 완전히 젖은 상태에서는 물에 대한 어떤 것도 조심스럽지 않다. 양철지붕의 처마 밑에서 지붕의 골을 통해 흘러내리는 물을 맞고 서 있었다. 쪼르르 내리는 물은 머리를 간지럽히고 목덜미를 통해 등으로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지붕에 빗물받이를 설치한 집은 한쪽에 선홈통이 있었다. 설치한 지 오래되어 중간이 잘린 선홍통 아래 선다. 지붕에서 바로 내리는 물의 양보다는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린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숨쉬기를 조절한다. 자칫 코로 물이 들어가면 콧속 깊숙이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진통과 함께 머리까지 쭈뼛해진다. 엄마는 중간에 잘린 선홈통 아래에 높은 고무통을 놓고 물을 받기도 했다. 빗물은 빨래도 잘 되고 세수할 때 우물물보다 피부가 더 매끄럽다고 하셨다. 그렇게 동생과 빗속을 뛰어다니다 보면 입술이 퍼레지면서 이가 다다닥 부딪히기도 했다. 집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몸을 헹구고 젖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엄마는 전을 부치셨다. 서울에서 먹어보시고 맛있었다며 가끔은 소시지 넣은 핫도그도 만들어 주셨다. 맛있는 부추전을 먹으며 비 맞으며 있었던 일로 동생과 엄마와 수다가 이어진다. 어느 집 선홈통에서는 녹물이 나오니 거긴 좋지 않더라. 농협의 선홈통이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좋더라. 양껏 먹고 몸이 따뜻해지면 노곤해지면서 졸음이 온다. 요를 펴고 주황색 다우다천에 기계자수로 수놓은 이불을 덮는다. 처음에는 다우다천의 촉감이 서늘하다가 곧 체온으로 온기가 느껴진다. 여름에 덮었던 주황색 이불은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함께 방을 환하게 하면서 내 마음도 그처럼 밝게 해 줬다.   

       

방의 천장은 양철지붕을 사각으로 도려내고 플라스틱 골 지붕을 덧댄 천창이 있었다. 천창 덕분에 늘 방이 환했고 방안에서도 날씨의 변화를 빠르게 느낄 수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천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양도 흐릿하게 보였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톡! 하고 떨어지며 옆으로 파편이 튄다. 툭! 투툭!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가 많아지면 물방울들이 하나가 되어 낱낱의 방울은 보이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면 비의 세기와 빠르기를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톡톡 토도톡 후드득 후드드득 흐드드드득 쏴아~~~” 양철지붕의 떨어지는 빗소리는 가벼운 고음이었다. 천창에 내리는 빗소리는 둔탁한 저음이었다. 번개의 섬광이 빠르게 지나가고 뒤이어 멀리서부터 천둥이 달려오는 듯하더니 “우르르 꽝꽝” 큰 소리를 터뜨린다. 비, 번개와 천둥이 함께 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태풍이 올 때 섬은 전체가 긴장 상태가 된다. 섬에서 태풍은 파도뿐만 아니라 비바람으로 인해서도 큰 피해를 입히기에 지붕을 돌로 누른다. 기다랗고 굵은 밧줄을 지붕 위로 넘겨 집 앞뒤로 늘어뜨린다. 양편의 줄 끝에 큰 돌이나 무게가 있는 것을 묶어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바람까지 부는 날은 바람 소리가 무서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소리로 겁을 주고 위협을 하는 것 같았다. “휘이잉, 휘이익, 휙휙” 속도가 빠른 바람 소리, 바람에 무언가 날아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지붕이 날아가면 어떡하지, 무언가 날아와 지붕이 부서지면 어떡하지? 비가 세차게 내리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던 기억이다.      

    

딸아이는 자라서 산성비에 대한 피해에 대해 배우면서 비 오는 날 일부러 비를 맞는 일은 없어졌다. 나와 아이가 걱정 없이 비를 맞으며 자연을 놀이 삼아 자연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한다. 비가 몸에 닿는 느낌이 좋다는 아이의 말에 어렸을 적 내가 느꼈던, 말로는 전할 수 없었던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이런 감성도 닮는 것일까?

          

머리에 얼굴에 등에 “톡, 토독, 톡, 툭 툭, 투두둑. 투두두둑, 쏴아~~”           

 



이미지 출처: © sasint, 출처 Pixabay © sasint, 출처 Pixabay

 © sasint,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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