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원 May 06. 2023

정금나무를 찾아서

무모한 도전

그 아이의 입술은 짙은 청보라 빛이었다. 바다에서 오랜 수영 끝에 추워서 입술이 퍼레지는 것과는 달랐다. 입병이 나서 바르는 보라색 약의 색깔도 아니었다. 작고 마른 갈색 머리의 친구는 한동안 청보라 빛 입술로 등교했다. 산을 넘어 학교에 오는 친구들은 열매를 따서 먹으며 먼 등굣길의 지루함을 덜었을 것이다. 입술이 색깔을 띠는 이유였다.     


항구에 사는 아이들의 부모는 거의 상업에 종사했고 주위 환경이 돈으로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농촌은 돈이 들어올 시기가 정해져 있었고 돈이 있어도 무엇을 살만한 가게가 없었다. 내 간식은 가게에서 파는 과자, 사탕, 빵 종류였다. 농촌의 친구들에게는 학교 오는 길의 산과 들에 열린 나무 열매들이 간식거리였다. 친구들은 계절에 따라 가지고 오는 열매의 종류도 다양했다. 봄에는 붉은색 작은 열매 뻘뚝(야생 보리수). 조금 지나면 예쁘게 색을 입은 새콤달콤 살구. 여름 방학이 끝나면 블루베리보다 작지만 안토시안이 많다는 검은색 정금. 짧은 털이 있는 붉은 산딸기 등이다. 친구들이 따온 열매들은 시큼하기도 하고 달달하기도 했다. 가끔씩은 내가 가진 사탕과 맞바꿔 먹기도 했다. 처음엔 시큼한 맛이 내가 가진 사탕 맛보다 못한 것 같았지만 어느새 열매들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정금을 많이 따온 날은 친구들이 양손 가득 담아주기도 했다. 그런 날은 나도 짙은 청보라 입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작고 가녀린 정화가 짙은 청보라 빛 입술을 하고 정금을 나눠주었다. 항구에 사는 아이들은 배급받는 것처럼 손바닥을 벌려 조금씩 얻어먹었다. 찔끔찔끔 얻어먹는 정금이 성에 차지 않은 한 친구가 정금을 따러 가자고 했다. 친구 정화에게 정금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지만 들어도 우리는 그 길조차도 알지 못했다. 학교 후문 쪽으로 난 길은 친구들이 산을 넘는 지름길이었다. 그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으면서 가다 보면 정금이 열린 나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아이들은 정금을 따서 담을 주전자를 하나씩 가지고 만나기로 했다. 나는 산딸기와 뱀딸기는 구분할 수 있었지만 정금나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각자 다른 크기의 주전자를 한 개씩 들고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학교 후문에서 출발해 넘어야 할 산길은 우리 모두 처음 걷는 길이었다. 다행히 그 길은 산 너머에 사는 학생들이 다니면서 다져진 길이어서 산 고개를 쉬이 넘을 수 있었다. 정금을 따려면 산속으로 들어가야 할 터인데 길로만 걷는 것은 우리의 목적 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친구가 등하교하는 길 양옆의 산속에 정금나무가 있을 거라는 생각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친구 집을 향해 방향만을 짐작하며 산으로 산으로만 걸었다. 우리는 소나무가 아닌 나무는 더 유심히 보기로 했다. 열매가 열린 나무를 찾기로 했다. 정금나무의 키도 잎 모양도 알지 못하니 정금나무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자도 없이 뙤약볕에 덥고 힘들었다. 빈 주전자는 귀찮았다. 오랫동안 걷기만 한 우리는 목이 마르고 지치고 배가 고팠다.      

정금나무

아무 소득 없이 더 이상 산속에서 헤맬 수는 없었다. 우리는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길도 없는 산을 내려오면서 바다가 보여 안심이 되었다. 마을이 가까이 있을 것이기에. 내리막 길을 걸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야 했다. 

그때 동네 한 아주머니가 


“느그들 어디서 왔으까”

“도청리에서 왔는데요.”

“누 집 찾아왔니?”

“정금 따러 왔는데 정금을 못 땄어요. 도청리 가는 길이 어디예요?”

“누구 딸인가?”

“정 OO 딸인데요.”

“니가 OO딸이니! 이리 온나 밥 먹고 가라.”


마음 한편으로 안심이 되고 감사했다. 점심이 아니라 물만이라도 감지덕지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아주머니는 나와는 먼 친척이 된다고 하셨다. 아주머니는 학교에서 나에게 정금을 주었던 작고 가녀린 정화 어머니셨다. 우리는 권덕리에 살고 있는 정화를 만나 더 반가웠다.  

   

곧 아주머니가 점심을 가지고 오셨다. 쌀은 거의 보이지 않은 보리밥과 양파를 고춧가루와 버무려서 반찬으로 주셨다. 나는 먼 길을 걸어 허기진 상태여서 잘 씹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보리밥도 꿀처럼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은 후 아주머니는 정금을 하나도 따지 못하고 고생만 한 우리를 안쓰러워하시며 배웅을 해주셨다. 우리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친구는 동네 어귀까지 따라와 우리가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대략 설명해 주었다. 모두 초행길이기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길만 따라가기로 했다. 산속을 헤매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에.      


허기도 면하고 쉬는 동안 충전되어 가벼워야 할 발걸음은 빈 주전자와 함께 너무도 무거웠다. 집까지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거친 비포장 길을 걸으며 발바닥도 아팠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길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분교를 다니다가 고학년부터는 본교로 다녀야 하는 친구들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1시간을 넘게 걸어 학교로 오는 길이었다. 그 거친 길을 걸으며 사람이 사는 환경이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 그 먼 곳의 친구들이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성장의 동력이 되었을 거라는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 비록 철없고 무모했던 도전은 실패했지만 그날의 일은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하는 첫 경험이었다.


이전 06화 벼 베는 연습도 헛되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