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원 Apr 29. 2023

벼 베는 연습도 헛되고

초등생의 농활

5월의 청보리는 푸르렀다. 가시 같은 수염이 길게 자란 청보리는 난생처음이다. 엄마는 청보리만 보고도 이어진 회상으로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2월에 밟아주던 보리와 같은 것인지 여쭈었더니 다른 종이라고 하셨다. 어릴 적 농촌에서 가장 바쁜 봄, 가을 농번기에는 일주일씩 방학이 있었다. 기계가 없이 전적으로 사람의 힘으로만 농사를 지을 때 시간이 중요한 농사일은 어린 자녀들의 손이라도 빌려야 했다. 2월에는 고학년 전원이 보리밭으로 보리밟기를 하러 갔다. 추운 겨울에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밭의 흙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땅이 부풀어 오른다. 이때 보리는 뿌리가 드러나 얼거나 말라서 죽을 수 있다. 보리가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려면 보리를 밟아 뿌리를 눌러 주어야 한다. 어린 보리를 밟으면 죽을 것만 같은데 밟아주는 것이 보리를 살리는 것이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에 들어가 아직 어린 보리를 밟으며 걷는 것이 일이었다. 보리밟기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섬에서 하는 노력 봉사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농번기 방학 전후로 고학년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봄에는 모내기를 하러 갔다. 모내기를 하러 갈 때는 거머리가 다리에 붙지 못하도록 스타킹을 준비했다. 선생님과 들판에 도착하니 어른들은 모 줄에 맞춰 모를 심고 있었다. 모내기를 끝낸 밭은 자로 잰 듯 간격을 맞추어 나란히 심긴 모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줄을 맞춰 심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선생님은 우리가 모내기할 논 앞에서 여러 주의 사항을 말씀하셨다. 자신 앞과 좌우로 모 줄에 표시가 된 곳에 모를 심으라는 말씀에 뭐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스타킹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엄마의 살 색 스타킹이 있었다. 신발을 벗고 스타킹을 신고 논으로 들어갔다. 스타킹이라는 안전장치는 거머리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냈다.


 

논에 발을 살그머니 담그며 깊이를 가늠했다. 거머리는 보지도 생각지도 말자 다짐하며 모 줄이 있는 곳을 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다에서 보다 훨씬 큰 저항이 느껴졌다. 팔을 휘적거리며 다리는 철벅거리며 모 줄을 향해 갔다. 친구들이 나란히 한 줄로 서니 그 사이에 계신 어른이 손에 모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처음에는 같이 따라 하면서 천천히 모를 심어보라고 하셨다.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모를 살짝 꽂아주면 된단다. '간단하네... ',  '어~!! 근데 '모를 심으려면 논에 손을 담가야 하는데 그럼 거머리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현기증이 나는 듯도 했다. ‘손에는 스타킹이 없는데!!’ 언젠가 다리에 거머리가 붙은 아이가 거머리를 떼려 해도 쉬이 떨어지지 않던 장면이 떠올랐다. 갑자기 맨손으로 모를 심는 것은 공포가 되었다.

결국 나는 몇 포기 심지 못하고 논 밖으로 나와야 했다. 선생님께서 거머리가 무서워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를 불러내신 것이다. ‘장갑을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 장갑은 왜 준비하라고 하지 않은 거야’ 엄마가 주신 스타킹이 있어 모내기를 잘했노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스타킹만 버렸다. 팔을 휘적거리며 논둑으로 나와 흙물이 잔뜩 베인 스타킹을 벗었다. '거머리에 물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야!!' 친구들이 심은 연둣빛 모는 옅은 바람결에 살랑거리며 춤을 추었다.

 



가을 농번기에는 벼를 베러 갔다. 엄마는 큰댁에서 내가 쓸만한 작은 낫을 빌려오셨다. 엄마는 낫을 다룰 때 주의할 점과 벼 베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왼손으로 벼를 먼저 잡고 난 후에 낫을 왼손 아래에 대고 오른손에 힘을 주어 내 쪽으로 당기라 하셨다. 집에서 몇 번 허공에서 벼를 베는 연습을 했다. 허공에서 벼를 베는 것은 바다에서 헤엄치기보다 쉬웠다. 벼를 베는 것은 얼마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내기할 때처럼 거머리에 대한 공포도 없으니 식은 죽 먹기지!


노력 봉사하는 날은 소풍 가는 분위기이다. 공부하지 않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친구들은 새끼로 감은 낫을 들고 단체로 노래도 하고 재잘거리며 재를 넘었다. 들판은 누런 황금빛 벼들이 따가운 해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했다. 황금빛 사이로 알록달록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벼를 베어야 할 논 앞에서 논 주인은 벼 베는 것을 찬찬하게 잘 설명해 주셨다. 벼 베기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벼가 빼곡한 논에 투입되었다.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줄을 맡아 앞으로 나가며 벼를 베어야 했다. 


 

내가 맡은 줄 앞에 앉았다. 엄마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왼손으로 벼 아래를 잡고 낫을 왼손 아래쪽에 대고 내 쪽으로 당겼다. 어라!! 잘리지 않았다. 다시 왼손. 낫. 당기기. 잘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낫을 한 번에 당기지 않고 손에 힘을 주며 조금씩 내 앞으로 당겼다. 벼가 베어졌다. 다시 한번. 잘 되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이 잡아볼까?’ 벼를 한 움큼 잡고 베어 본다. “아얏!!” 약지 손가락 끝 마디 부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피가 나면서 쓰렸다. 뭘 해보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다쳐 선생님과 친구들 보기도 민망했다. 선생님께로 가서 소독약 바르고 밴드 붙이고 내 작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쨍쨍 내리쬐는 해를 받으며 친구들이 일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이란... 다음 해 6학년 때도 벼를 얼마 베지도 못하고 이번엔 새끼손가락 끝 마디를 길게 베었다. 항구 쪽에 사는 나와 친구들은 농사 경험이 없어 서툴렀고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열심히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시간이었다. 


 

추수기는 농부들이 그동안의 노고가 결실을 거두는 거룩한 시간이다. 곡식을 거둬들이는 시기가 늦어지면 안 되기에 초등학생들의 손까지 빌려야 했던 때이다. 내 진심과 달리 농부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잘해보려고 했던 어린 내가 있었다. 내 왼손 두 개의 손가락에 있는 흉은 노력 봉사 훈장이라도 된 양 아직도 건재하다.


이전 05화 머리에 핀 플라스틱 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