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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Mar 25. 2023

머리에 핀 플라스틱 꽃

동생들이 소풍 가는 날


운동장 건너 철봉에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보인다. 머리카락 끝에 플라스틱 머리핀이 귀걸이처럼 매달려 있다. 머리 여기저기엔 색색의 핀들이 쌍으로 대칭을 이루며 헝클어진 머리카락들 사이로 헐겁게 꽂혀있다. 아이는 철봉에 매달려 다리를 구르며 앞으로 넘고 거꾸로 뒤로 넘기도 했다. 다시 다리를 철봉에 걸치고 머리는 땅을 향한 채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아이의 얼굴은 교사를 향한 상태로 하교하는 길에 무리 지어 나오는 학생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있다. 순간 아이는 손으로 철봉을 잡고 다리를 풀어 땅을 밟고 선가 했더니 누군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교복 입은 학생들 사이사이를 뚫고 어느 한 여학생의 팔을 휘감는다. 


“나 왔어”

“학교에 왜 왔어 집에 있지... 권이는?”


동생의 머리에 헐겁게 핀 플라스틱 꽃들이 친구들에게 조금은 창피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아빠가 김포에서 양계를 하고 계셔서 엄마는 이따금 아빠에게 다녀오셨다. 엄마가 아빠에게 가실 때면 길게는 일주일 정도씩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곤 했다. 엄마가 안 계실 때는 요리를 배우지 않았지만 엄마 흉내를 내면서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었다. 학교 끝나고는 5학년, 2학년인 동생들 공부도 봐주고 건재상을 했기에 손님이 오면 시멘트도 팔았다. 


한 번은 엄마가 김포에 가셨을 때 초등학교 다니는 동생들의 가을 소풍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위수술을 받으러 가시면서 엄마가 소풍에 따라올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친구 엄마가 반으로 데리러 오셔서 점심을 같이 먹었지만 외롭고 쓸쓸했다. 그래서 동생들이 소풍 가서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도록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집 아주머니께 도시락을 준비해서 드리면 가지고 가셔서 동생들과 함께 식사해 줄 것을 부탁드렸다. 


소풍 전날 하교 후부터 동생들이 소풍 가서 먹을 도시락 반찬거리와 간식과 음료를 사러 가게에 갔다.


“아줌마 두부와 계란 주세요”

“동생들 소풍 도시락 싸려고?”

“네~”

“원이 다 컸구나. 동생들 도시락도 싸고.”

“……”

“맛짱구랑 인디언밥도 주세요. 환타도 2개 주세요”


아줌마가 준 물건을 받아 그물로 된 장바구니에 넣는다. 

이번에는 친구네 가게로 가서


“아줌마 어묵이랑 콩나물 주세요”

“뭐 할래?” 

“동생들 소풍 도시락 싸려고요.” 

“엄마는 아빠한테 가셨니?” 

“네.” 

“우리 딸 것 만들면서 더 만들어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데 어묵이랑, 콩나물을 반찬으로 만들어가면 안 쉬어요?” 

“어묵은 기름 두르고 간장이랑 볶고, 콩나물을 아침에 무치면 안 쉰다.” 

“여기 있다. 원이 엄마는 딸 다 키웠구나.” 


혼자 장을 보면서 아줌마들이 기특해하며 하는 말이 더 서글프다. 뒤돌아서며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지로 참아낸다. 동생들도 내일 소풍 가면 엄마가 안 계셔서 힘이 빠져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쓰럽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가서 간식거리를 먼저 동생들 앞에 풀어놓는다. 


“너네 더 먹고 싶은 것 있어?” 

“응, 껌…” 

“난… 사탕” 

“그럼 그것은 너희들이 가서 사 와. 언니는 낼 도시락 쌀 준비를 할 테니까” 


엄마였다면 거절을 하거나 둘 중 하나만 사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안 계시니 동생들에게 더 후하게 하는 나다. 


저녁을 먹고 도시락을 싸기 위해 찬합과 물병을 찾고 도시락을 쌀 보자기를 찾는다. 밥은 팥과 찹쌀을 섞고, 도시락 반찬은 멸치볶음, 두부부침, 어묵볶음, 콩나물무침을 할 것이다. 아침에 모든 것을 다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저녁에 만들어 놓을 것과 아침에 해야 할 것을 구분 지어본다. 동생들은 숙제를 하고 나는 부엌과 가까운 곳에서 양푼을 놓고 멸치볶음 준비를 한다. 중간 크기의 멸치 대가리를 떼고 창자를 훑어내고 몸통을 반쪽으로 가른다. 어느 정도의 양을 해야 할지 가늠은 해 보지만 꽤 많은 양의 멸치를 다듬었다. 


엄마가 어떻게 멸치를 볶았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먹었던 기억으로 맛을 내는 수밖에 … 석유풍로에 불을 켜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멸치를 조금 넣고 볶다가 진간장을 넣고 설탕을 넣어서 볶았다. 프라이팬 주걱으로 열심히 저었는데도 프라이팬이 타면서 연기가 난다. 멸치는 엄마가 볶을 때보다 짜고 맛이 없고 멸치도 탔다. 나는 멸치를 다 버리고 프라이팬을 물로 닦는다. 다시 풍로에 불을 켜고 기름을 조금 두르고 멸치를 넣어 멸치를 바삭하게 굽는다. 그리고 간장을 아주 조금 넣고 설탕을 뿌린 다음 풍로 불을 끄고 멸치에 간장과 설탕이 골고루 섞일 수 있도록 주걱으로 젓는다. 아까보다는 짜지도 않고 보기에도 괜찮지만 엄마가 할 때처럼 윤이 나지도 않고 멸치는 씹을 필요가 없이 입에서 부서져 버린다. 그래도 이만하면 아까보다 낫다 싶어 통깨를 뿌리고 찬합 맨 위 칸 한쪽 편에 예쁘게 넣는다. 





소풍 가는 날 아침에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에 씻어놓은 팥과 찹쌀을 섞은 쌀을 밥솥에 안치고 불을 켠다. 두부는 넓적하게 잘라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옷을 입혀 기름에 부친다. 콩나물은 데쳐서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무친 후 참기름과 통깨 뿌려 마무리한다. 사각 어묵을 도마 위에서 마름모꼴이 되도록 자르고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살짝 볶다가 얇게 썬 양파를 넣고 간장을 아주 조금 넣는다. 색깔을 내기 위해 파의 초록 부분을 잘라 넣고 불을 끈 후 깨를 뿌린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이사이 동생들을 깨워 소풍 갈 준비를 하라고 한다. 엄마가 안 계시니까 옷을 고르기가 더 힘들다. 동생들이 엄마가 안 계신 티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울리는 옷과 스타킹을 찾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다. 여동생은 약간 곱슬머리여서 파마를 했는데 파마머리는 시간이 지나자 더 지저분해졌다. 머리를 묶어도 짧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에서 삐져나왔다. 


“영아! 머리핀 통 가지고 와” 


머리핀 통에는 한창 유행이었던 플라스틱 핀이 쌍쌍이 있었다. 

거울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동생의 머리에 대칭으로 머리핀을 꽂아준다. 

빠져나온 머리카락 없이 머리는 단정한데 머리핀이 너무 많다. 


“언니! 머리핀이 너무 많아” 

“괜찮아, 너 놀다가 머리 다 헝클어지고 머리 삐져나오는 것보다 나아” 


동생은 엄마가 안 계시니 언니의 말에 더 순종적이다. 


“언니는 학교 가야 하니까 도시락은 태균이 아줌마한테 부탁했어. 점심시간에 권이 반에 가서 권이 데리고 태균이 아줌마 찾아서 점심 먹으면 돼” 

“응” 

“영아, 권아! 소풍 갈 때 줄 잘 맞춰서 가고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된다. 가서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보물찾기 할 때 너무 깊은 데로 가지 말고… 보물 안 찾아도 돼, 엄마 오시면 사달라고 해도 되니까 알겠지?” 


동생들은 간식이 든 가방을 등에 메고 어깨에 물병을 메고 들떠있다. 그런 동생들을 보는 내 마음은 짠하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렇게 소풍을 보낸 날 여동생은 소풍 다녀와서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언니를 운동장 철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내려다보이는 부두를 보면서 오늘 저녁 배를 타고 엄마가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동생을 데리고 하교했다. 중학교 1학년 13살의 어린 소녀는 맏이로서 무게를 감당하며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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