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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Mar 18. 2023

그때 바다

섬에서 수영을 하기까지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수영할 수 있을까?’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저절로 익혀지는 것일까?’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섬에 산다고 모두 수영을 잘하는 건 아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레슨을 받으며 수영을 배우지는 않는다. 수영을 못한다고 해서 죽을 각오를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도 아니다. 헤엄을 잘 치지 못하는 아이들은 실제로는 목숨을 내놓고 수영하고 있는 것인데도 정작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섬에는 모래사장이 드넓은 해수욕장이 두 곳 있었고 수영할 수 있는 포구는 마을마다 있었으나 포구가 가깝지 않은 아이들은 저수지에서 수영했다. 친구들과 가끔 다녔던 지리(청송) 해수욕장은 바닷바람이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심은 200년이 넘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군락을 이루며 아름다웠다. 여름에는 뙤약볕에 그늘을 만들어 주어 행사를 진행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은 아빠와 유치원 소풍을 갔던. 친구들과 수영하다 출출해지면 바닷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먹던. 전학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중학교 2학년 전체가 수영하러 갔던 기억이 있어서 더 많이 생각나는 곳이다. 초등학생 때는 멀리에 있는 해수욕장까지 가지 않고 집 뒤에 있는 바다에서 주로 수영을 했다. 


우리 집은 바다 쪽에 있어서 집 뒤가 바로 바다였다. 썰물에 물이 나가면 멀리에 모래밭이 드러나 언니, 오빠들은 조개나 게를 잡기도 했다. 모래밭은 어린아이들이 금을 그어 놀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썰물에는 바닷속 지형을 훤히 드러내 보이기에 늘 수영하는 바다가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동네 아이들은 자유롭게 수영을 하지 못하더라도 도구에 의지해서라도 수영을 하고 있었다. ‘나도 헤엄을 조금 칠 수 있구나’라고 인식했을 때 내가 하는 것은 개미헤엄이었다. 누구에게 배운 기억은 없다. 물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어느 날인가부터 물에 뜰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4학년 때 친구와 수영을 하기 위해 포구 쪽으로 갔다. 그날은 물의 깊이가 허리춤 정도여서 친구를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하며 뒷걸음으로 더 깊은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시야에서 친구는 사라지고 어둠만 가득했다.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왔다 반복할 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소리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 꼬르륵..., 

“사람~~” 꼬르륵..., 

“사람 살려”라는 말을 다 하지 못한 채로 물속에 잠겼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죽는 건가?’ 다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사람~~” 꼬르륵...

“사람~~” 꼬르륵...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를 끌어 내주었다. 동네 오빠는 처음에는 내가 수영하는 줄 알았다가 심상치 않다고 여겨 꺼내준 것이라고 했다. 썰물 때 보았던 웅덩이에 발을 내디디면서 몸이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린 것이다. 썰물에는 얕은 웅덩이였지만 밀물에는 깊이가 달라 수영을 하지 못한 나에게는 죽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엄마 아빠한테 꾸중을 들을까 봐 얘기하지 못했다. 죽을뻔했는데도 그곳에서 계속 수영을 했던 것을 보면 나에게 그 일은 아주 큰 사건은 아니었던 듯하다. 섬에서 여름에 수영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고 놀겠는가마는. 5학년 경 아빠가 해수욕장에서 개구리헤엄을 가르쳐 주셨다. 개미헤엄이나 뱅꼬를 가지고 물장구를 치며 헤엄쳐가던 곳을 이제는 내 힘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영하는 친구들이 많은 포구 저편까지는 물이 깊고 거리가 멀어 중간에 힘이 빠질까 걱정이 되었다. 조금씩 거리를 멀리 잡으며 수영하다 보니 곧 익숙해졌다. 수영에 자신감을 갖게 된 나는 친구들이 하는 것들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밀물때는 포구 높은 곳에서 다이빙하기, 배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 배 옆구리 밑으로 잠수해서 반대편으로 나오기, 뱃머리에서부터 잠수해서 배의 후미까지 나오기. 


밀물 때 친구들은 포구 높은 곳에서 다이빙을 했다. 중간의 높이에서 뛰어내리기 연습을 많이 해봤기에 가슴은 조금 두근거리지만 해 보고 싶었다. 위에서 순서대로 하나씩 뛰어내리고 뛰어내린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옆으로 비켜서 지켜보고 있으면 다음 순번이 뛰어내렸다. 내 차례가 되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첨벙~~~~” 


사방으로 물을 튀고 나는 창자가 터지는 줄 알았다. 배가 너무 쓰리고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일명 배치기를 한 것이다. 그 후 몇 번의 시도가 더 있었지만 아픔을 참으며 반복하고 싶지 않아 다이빙 흉내는 내지 않기로 했다. 


그다음 도전은 배 옆구리 밑으로 잠수하는 것이었다. 몸을 최대한 바다의 바닥에 가깝게 해야 등이 배에 닿지 않고 건너편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잠수는 자신 있었지만 물속에서 눈을 뜨지 못하는 나는 방향을 잡지 못해 밖으로 나오는 방향을 찾지 못할까 봐 겁이났다. 잠수가 충분하게 연습이 되었다 싶었을 때 몸을 최대한 낮게 하고 직선방향으로 헤엄쳐 배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것을 식은 죽 먹기로 하는 친구들 앞에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크나큰 성취였다. 내가 이런 과정을 익힌 곳은 방파제 안의 작은 포구였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어른들에게 요청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곳인데도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다니게 된 실내 수영장에서의 수영은 바다와는 달리 부력이 약해 힘이 더 들었다. 하지만 안전해서 마음껏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몸이 쉬 차가워져서 오랫동안 수영을 할 수 없지만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는 가능하면 수영복을 챙긴다.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혼자만의 수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힘을 빼고 물 위에서 물의 흐름을 느끼며 편히 누워있는 것. ‘엄마의 자궁 안에 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물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긴다. 어느 한 곳 조금이라도 더 힘을 주면 몸이 기우뚱하며 중심을 잃고 나를 떠받치고 있는 물의 고요함이 깨진다. 일상의 삶에서도 이러하다. 마음이 중심을 잃으면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평정심을 잃게 된다. 비록 개구리헤엄이지만 그때 바다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물 위에 누워 이런 깨달음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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