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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Jun 17. 2023

당신이 남기신 유산

아빠의 농장



아빠는 동물에 관심이 많으셨다. 내가 태어난 해 겨울에 닭이 알을 낳자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고 방으로 가지고 들어오셨단다. 엄마는 닭이든 돼지든 식용이거나 수입원으로만 바라봤지 특별한 애정은 없으셨기에 아빠의 행동을 별나게 느꼈다. 건재상을 하셨던 아빠는 도시에 자주 다니시면서 우리들의 교육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아빠가 건재상을 했던 시기는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의 주거환경이 바뀔 때라서 돈을 조금 모으셨다. 그때부터 가족과 함께 당신이 하고픈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고심하면서 육지를 자주 나가셨다. 수도권에서 사업을 시작하길 원하셨던 아빠가 발품을 팔아 찾은 곳이 김포였고 땅 1300평을 사서 혼자 양계를 시작하셨다. 그곳은 아직 가족을 데려와 살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다. 넓은 평야 한가운데 있는 농장은 주변에 가구 수가 적어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아빠는 양계를 시작하기 위해 우물을 팠고 그곳의 초기 입주민 몇 분들과 함께 길을 닦고 마을에 전기를 끌어들이셨다.


깨끗한 땅에서 병아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엄마가 다니러 오셨을 때 보니 병아리들이 넓은 땅을 종종거리며 다니는 것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고 하셨다. 아빠는 가족과 합가 할 때를 생각하면서 양계를 주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정하셨다. 병아리가 3000마리. 그 병아리가 1개월~1개월 보름이 되면 삼계탕용으로 2개월이 되면 후라이드용으로 팔려간다. 아빠는 이 정도 기간이면 자금 회전도 빠르고 수도권이기에 판로도 좋다고 판단하셨다. 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병아리들은 처음처럼 건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깨끗한 땅이었기에 오염원이 없었지만 이미 닭들이 살던 곳에서는 닭이 쉽게 병이 들었다. 수의사를 하시던 큰아버지의 조언을 들어가면서 닭을 길렀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어느 해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면서 닭들이 폐사하게 되자 아빠는 큰 실의에 빠지셨다. 



그 시기에 우리 가족은 서울 봉천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아빠가 혼자 계시는 것보다는 풍족하지 못해도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결정 때문이었다. 또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나를 위해 더는 미룰 수도 없었다. 엄마와 동생들은 겨울방학이 끝날 즈음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는 전학이 늦어져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 수 있었다. 서울집은 부엌이 붙어 있는 방 한 칸짜리 우리 집과 주인집, 다른 방에 세 들어 사는 한 집까지 모두 세 가정이 살았다. 마당 가운데 수도가 있었고 대문 옆의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았던 주인과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가 겪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전학을 오면서 근사한 집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기에 엄마와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좋아 처음에는 불편한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처음 온 서울. 내가 사는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 섬과 비교할 수 없게 셀 수 없이 많은 집. 밤에도 대낮처럼 모든 것이 화려하고 밝게 빛이 나는 서울. 어린 마음에 좋기만 했다. 낮에는 한 학기 먼저 온 동생들이 동네 주변을 소개해주었다. 떡볶이와 핫도그는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만화 가게도 두 곳이나 있어 찜해두었다. 




어느 날 낮에 아빠가 85번 버스를 타고 창경궁(창경원-그 당시 동물원)을 데리고 가셨다. 동생들은 어린이날 다녀왔다면서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 것이다. 창경원 가는 길목의 특별한 정거장 이름과 건물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 서울이 처음인 나는 도시의 모든 것이 크고, 많고, 넓고, 높아서 멋져 보였다. 멋진 곳에 살게 되어 나도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가 가는 길을 유심히 보면서 정거장 이름과 눈에 띄는 건물을 함께 기억했다. 방학 때 전학을 온 나는 아직 친구가 없었다. 책을 빌려볼 곳도 없었다. 내가 긴 방학을 보내는 일 중에 하나는 아빠와 탔던 85번 버스를 타고 창경궁까지 갔다가 건너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한강 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한강은 바다 같았다. 서울역 건너편 높은 빌딩 앞을 지날 때는 언젠가는 저런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대문을 지나갈 때면 몇 정거장 지나면 창경궁에 도착하겠구나 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섯 가족이 함께 서울에서 2년 정도 살고 아빠만 양돈 사업을 위해 비워두었던 김포 농장으로 다시 들어가신다고 하셨다. 서울에서 하는 가게도 잘 되고 있어서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같이 살면 좋겠다고 난 생각했다. 아빠는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시고 당신이 하고픈 것을 선택하셨다. 양계에 실패한 후 지방의 양돈농장을 다니면서 돼지는 닭처럼 큰 전염병은 없기에 닭보다는 실패의 위험이 적다고 판단하셨다. 돼지의 임신 기간은 115일 약 4개월에 한 번 12~14마리를 낳는다. 1년에 두 번 정도 새끼를 낳는 것이다. 


어미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는 어미돼지도 아빠도 예민해졌다. 새끼가 태어나면 새끼돼지 중에 초유를 못 먹는 것이 없도록 작은 것부터 먹게 했다. 초기에는 스툴이 아닌 넓은 공간에서 키웠기에 어미 돼지에게 새끼가 깔려 죽지 않도록 돈사를 드나드시며 자주 살펴야 했다. 새끼가 젖을 떼면 백신을 접종하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라" 밥을 줄 때도 "맛있게 먹어라" 한 마디씩 하셨다. 농장에 간 날 가끔 돈사에 들어가면 나도 아빠를 따라 “안녕, 건강하게 잘~~ 자라라." 인사를 했다. 아빠에게 돼지는 가족이었다. 내게는 어쩌다 보는 돼지가 다 같아 보이지만 아빠는 구별해서 알고 계셨다. 새끼는 6개월을 키워서 팔고 어미 돼지는 네 번까지 새끼를 낳고 팔았다. 엄마는 이렇게 네 번까지 새끼를 낳아준 돼지는 집에 돈을 벌게 해 줘서 고마웠고 그동안 정이 들어서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중에 나와 여동생은 공항동에서 살고 엄마가 농장으로 들어가시면서 아빠는 양돈 규모를 늘려 1,200마리 정도까지 기르셨다. 




아빠는 연말이면 1년 동안 했던 일 중에서 잘한 것과 후회된 것을 정리하고 새해 계획과 다짐을 적게 하셨다. 그렇게 계획을 하고 나면 이번 새해에는 꼭 다 지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자녀를 키우면서 아빠가 매일 똑같은 시간을 연말과 연시에 구분 지어 반성과 계획을 하게 하셨던 가르침이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에 농장에 갈 때면 종종 “꿈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꿈이 있어야 작은 목표들이 생긴다”면서 독서를 늘 강조하셨다. 봉천동 단칸방에 살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셔서 주무실 때도 나는 철없이 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는 했다. 방학이면 밤새 책을 읽는 내게 한 번도 불을 끄고 자라고 한 적이 없으셨다. 내가 나이가 들어 불빛이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하고서야 그 시절 부모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도 죄송스러웠었다. 아빠는 꿈꾸던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로 인해 생활도 여유로워지셨다. 농장 규모가 커지고 몇 년 후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서울 근교의 축산 농가에 대한 제약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더 깊이 들어가 양돈을 하거나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아빠는 다른 용도의 산업체에 건물을 임대하고 양돈은 그만두셨다. 


아빠를 보고 자란 나는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을 해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하는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하는 것 그것이 삶을 후회 없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안정되고 평탄한 것도 좋지만 다양한 경험이 주는 매력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여러 가지 목표를 가지고 단계별로 성취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빠가 젊은 시절부터 삶으로 살아내신 모습에서 내가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삶만이 내 아이들에게 유산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 내게 한없이 다정하셨던 아빠는 내 인생 최고의 사랑이며 스승이시다. 



대문사진 이미지: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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