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 모음

한 사람

예천 천변

by 정혜원

시와 산책. 한정원 작가의 에세이다. 문장이 너무도 시적이어서 반복해서 읽은 문장이 많았다. 문장 속 장면을 상상하며 작가가 느낀 것들을 감각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을까. 다음 페이지로 넘기지 못하고 소리 내어 읽었다. 시적인 문장들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찍은 사진과 짧은 톡을 보내오는 사람. 바쁜 일상에도 반복해서 찾아 읽게 되는 그녀의 톡. 톡에서 그녀가 있는 곳을 상상할 수 있고 표정까지도 그려진다.


그녀의 블로그에서 글을 보던 날. 너무도 맑고 순전한 글에 깜짝 놀랐다. 보내준 카드나 짧은 편지에도 따스하고 정겨운 느낌이 듬뿍이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자라며 기억에 남았던 풍경. 친정엄마의 헌신과 다정함. 어떤 이들은 무심코 지나간 것들이 그녀에게는 의미 있는 무엇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감성적으로 풍요롭다. 탄력적인 감정을 소유했다. 한정원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녀의 문장이 떠오른 이유다.


겨울을 나고 있는 천변의 좁은 길. 잎이 떨어진 나무와 황금색 갈대를 나눈 가르마다. 걷는 모든 이의 걸음과 그 순간의 마음을 보듬었을 좁은 길. 나란히 걷지 않아도, 앞뒤로 걸어도, 우리의 마음을 나누기에 충분한. 걷다 기다려주고 다시 걷고. 위치를 바꾸어 앞서고 뒤따르고...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자연처럼 잘 수용되고 변화되길 바라는 기도를 한다. 보내온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며 그녀와 내가 많은 부분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여 20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무였으리라.


그녀에게 책을 보냈다.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내내 떠오르는 얼굴이었다며. 우리는 만나 글을 읽으며 작가에 대해 상상한 것들을 나눴다. 작가의 감수성과 지향성에 대해. 온기와 민감함, 문체, 표현방식,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도 나눴다. 우린 때론 일치했고, 각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탄성, 탄성의 연속이었다. 미소 띤 얼굴과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기분이 고조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한 사람.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문장을 공유하며 공감대가 형성되니 에너지를 얻는다. 정적으로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이었다. 외롭지 않다. 꽉 찬 느낌이다. 24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나 손을 놓지 않고 이어온 연이다. 오래 함께한 시간이 있었고. 물리적인 거리로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서로에게 다른 벗들이 있지만 둘만의 시간은 다르다. 세상에서 채우지 못한 것들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 그녀의 톡과 만남이다. 감사한 아름다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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