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주는 것, 서툴렀던 어제의 나와 그 사람에게 더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 우리는 그런 어제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고통을 겪었고 심지어 누군가는 여기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그건 우리의 체온이 어쩔 수 없이 조금 내려간, 하지만 완전히 얼지는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돌아왔고 여전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힘들다면 잠시 시선을 비껴서 서로를 견뎌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되돌릴 수가 있다. (...) 세상은 형편없이 나빠지는데 좋은 사람들, 자꾸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지는 것은 기쁘면서도 슬퍼지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랑했다가 괜히 마음으로 거리를 두었다가 여전한 호의를 숨기지 못해 돌아가는 것은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랑하죠, 오늘도,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채 끝나지도 않았지, 라고."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문학동네, 2020, 117쪽에서.)
그 책 어땠냐고 묻는 누군가의 말에 답하기 위해 답은 하지 못하고 책장을 군데군데 만지작 거릴 때가 있다. 그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은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할지 몰라 적당히 기댈 곳을 찾는 일이다.
신간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그 책이 무슨 내용에 관한 것인지 같은 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채로 오직 그 책의 작가의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한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앞서 책의 여러 쪽들을 앞뒤로 넘겨가며 마음에 들었던, 마음에 닿았던, 마음에 남았던, 그런 문장들의 길이가 한 쪽이 되었다 두 쪽이 되었다 수십 쪽이 되었다 하는 일들이 오직 그 이름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책에는 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랑과 사랑 밖의 모든 말의 수신처인 각자의 "윤희에게"가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 당신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191쪽) 좋은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이 내게 왜 좋았는지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알지 못하는 많은 이유들로 그것이 좋았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내 미력한 말들로 써내려 온 시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시간들을 견뎌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현재 진행형으로 완성 중인 작가의 이야기를 만지작거리며 거기 담긴 시간과 미처 담기지 못했으나 분명 존재할 수많은 지난날을 어렴풋이 떠올린다는 것이. (202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