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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27. 2020

오늘 여의도는 무너지지 않는다

일하는 마음 생각하기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흐뭇했다. 점점 안심이 됐다. 끔찍했던 기억은 여전히 끔찍했고, 행복했던 기억은 여전히 행복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용기 있는 내가 없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 힘들었던 지난날에도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곳곳에 스며 있었음을 인정한다. 결코 스쳐 지나간 정류장이 아니었다. 멈춰선 자리마다 꽃이 흐드러졌고 열매가 영글었다."


(김선영,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에서)


김선영 작가님의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주어진 순간 앞에 성의를 다한 사람이 마주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 있다고 믿으면 여전히 불확실한 오늘이 나름대로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되는 것 같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고 해서 일하는 마음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출근하는 마음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 편이다. 어떤 순간에는,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망연했던 날들을 떠올릴 때 더 그렇다.

퇴사 후 막막한 내일 앞에 한 숨 잠도 이루지 못했던 날. 출근하기로 한 전날 또 불확실한 내일 앞에 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봤던 날. 그러고는 막상 다음날이 되자 또 아무렇지 않게 혹은 어영부영 혹은 어쩌다 보니 보낼 수 있었던 하루들. 그런 괜찮은 하루들 사이에 가끔 들어가 있는, '내일 출근 안 해도 됐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라든가 '이건 아니다' 싶었던 생각이라든가. 그 순간들의 상당 부분은 가볍게 휘발되어버리고는 드문드문 과정과 사이들만이 남는다. 다시 한번 얼마 전 끼적였던 '워크 앤 라이프 하모니'에 대해 생각한다. 밸런스 아니고 하모니.

'이번 봄이 제법 괜찮은 계절이 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지나 '이번 여름은 어떤 계절이 될까' 생각하는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도, <컨택트>(2016)의 루이스처럼 '모든 순간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단단함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일 서울교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영등포고가차도도 멀쩡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05.26.)


퇴근길의 영등포
흐린 날과 맑은 날의 여의도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뉴스레터 '1인분 영화'(링크)

*신세계아카데미 2020 여름학기 글쓰기 강의 '나만의 영화 감상평 쓰기'(링크)

*씨네엔드 영화 살롱 '김동진의 월간영화인'(링크)

*탈잉 원데이 클래스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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