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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05. 2020

몰랐던 취향들의 탄생

어떤 평일 저녁의 순간들

"어떤 맥주를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어요. 저는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없어요. 다만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이요'라고 말하죠. 제게는 가장 괜찮은 대답 같아요."

(톰 밴더빌트, 『취향의 탄생』에서)


연남동 경의선숲길 쪽에 있는 '커피감각'

1. 몇 년 전 커피를 한 달 끊어본 적이 있다. 그 한 달이 나를 '커피 한 달 안 마셔본 사람'이 되게 한 것 외에 직접적인 무언가를 가져다주진 않았지만 다만 돌이키면 얻은 것이 없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라떼 종류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루이보스며 카모마일, 얼그레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같은 티 종류를 많이 마셨다. 물론 지금도 티에 관해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지만 커피만을 음료로 삼았다면 맛보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그러니까 커피 한 달 안 마시기의 결과는 커피가 아닌 맛들을 어렴풋이 경험한 것이겠다.


2. 전적으로 지금의 인간관계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에 열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립되어가면서 변화했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에 관해 생각한다. 그러니까, 주어진 것에 적당히 순응하고 당면한 세계의 범위에 만족했더라면. 평행선을 걷듯 지금과 다른 세계로 이어졌겠지만 적어도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누군가 하라고 정한 것을 따르지 않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 자신이 무엇에 흥미와 호감을 느끼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새로 일을 하면서 나타난 변화는 커리어와 업에 대해 생각하는 정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재만이 아니라 지난날 걸어온 길에 관해서도 당대의 관점으로 돌아보고 의미를 재정립하게 만든다. 상기의 변화는 단지 취향만 바꾼 게 아니다. 삶의 방식 자체에 영향을 줬다. 환경을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능동적으로 돌아보고, 무엇과 어떻게 뿐 아니라 '왜'에 관해 숙고하는 일.


여의도 '메모리즈플라워'


4. 꽃을 아는 사람은 잎과 줄기의 생김새만으로 그것의 이름과 그게 언제 피고 지는지, 화병에 꽂을 땐 어떤 이유로 끄트머리 1센티미터 정도를 잘라내야 하는지 같은 것을 안다. 커피나 술을 아는 사람은 당도나 산미 같은 맛의 여러 요소들을 안다. 지금 말한 앎은 물론 기계적 학습의 주입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다.


5. 봐야 하는 사람과 만나면 그 시간은 불편한 시간이 된다. 생각과 태도를 닮고 싶은 사람, 세계관과 취향이 궁금한 사람과 만나면 그 시간이 짧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던 때가 있다. 지금은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있다.


연남동 경의선숲길 쪽에 있는 'EP Coffee&Bar'


6. 취향(趣向)을 취향(冣香)한다고 해볼까. 불과 1/3 정도를 보낸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몰랐던 세계 혹은 걸어보리라 짐작조차 하지 않았던 세계에 발을 적극 담는 시기가 될 것 같다.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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