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사무실을 떠나 새 사무실에서
위워크에서의 일상을, 혹은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좋아했던 건 커리어가 여기서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작하고 보니 여기였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공용 공간에서는 선별된 밝은 템포의 재생목록이 24시간 흘러나오고, 팬트리에서 음료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으며 메인 라운지에는 거의 편의점 하나가 통째로 들어와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곳. 출입카드를 찍어야만 층을 선택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같은 것에 기묘하게 소속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었다.
건물 1층에서 체온을 측정해야 위워크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지 얼마 후부터, 그날 처음 체온을 재면 하루 동안은 반복 측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의 스티커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킷 한쪽에 붙이다가 며칠 전부터 카드지갑 안에 붙이기 시작했는데, 또 며칠은 아무것도 아닌 이 스티커를 여기 겹겹이 붙여두었다.
사무실 이사 준비를 하는 동안 위워크에서는 (물론 비용을 내고) 대부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 프린트, 음료, 인터넷, 청소 등을 포함 - 것들의 대가를 실감했다. 통신사 기업고객센터에 몇 번을 전화해 속도며 약정 기간이며 요금제와 위약금 같은 것들에 대해 확인했고 전화 이전도 했다. 공유사무실 특성상 가지고 갈 가구가 없으므로, 그 밖의 사무용품과 컴퓨터 등 물품들만을 운반할 용달 예약도 했다.
이사 준비 업무를 혼자서 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사소한 일상의 일부이므로 이것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해보지 못했던 것 혹은 해볼 일 없었던 것들을 해보면서 마치 자립심을 기르듯 경험의 영역이 넓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여의도 위워크에서 내가 일했던 18층에서는 여러 익숙한 얼굴들을 거의 매일 봤다.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헛기침을 거의 출입문을 오갈 때마다 하시던 분, 헤드셋을 낀 채 항상 업무 연락을 하시던 분, 냉장고나 로스팅 머신 등을 청소하고 매일 휴지통을 비워주던 직원분들. 굳이 그들과 관계를 맺거나 교류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각자의 일들을 하는 공간이라는 데에서 오는 특별함이 있었다. 'Create your life's work'라는 위워크의 표어란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사를 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당분간의 어수선함을 지나 이곳의 공기가 익숙해질 것이며 지하 식당가에는 무슨 음식들이 있는지 같은 것들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사실 여의도를 벗어난 것도 아니고 이전 사무실과 새 사무실의 거리 역시 500미터 정도에 그치므로, 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는 언제든 다닐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가끔 즐기는 도보 퇴근길의 소요시간 역시 3~4분 정도 늘어난 것에 불과하고. 그러나 멀티탭의 콘센트를 뽑아 낯선 벽에 연결하고, 인터넷과 전화가 잘 되는지 확인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는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엘리베이터는 몇 대가 있는지 같은 것들이,
이곳에서의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다. 용달 트럭을 운전하셨던 연세가 좀 있는 기사 분은 자신도 십수 년 간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고 하셨다. 이사 갈 사무실 지하 식당가에 가면 뭐가 맛있으니 한 번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비롯해 가벼운 대화들을 나누며 일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했다. 월요일에 나는 출근을 할 것이다. 물론 일의 고단함은 공간을 옮겨도 분위기가 바뀌어도 어디 가시지 않고 그대로 있겠으나. 주말과 휴일만이 아니라 평일도 인생이니까. 평일도 일상이니까. 이 일상을 가능한 소중하게 보내려 이번 계절에도 노력할 작정이다. 일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상의 마음들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에 관해서도 한 편의 글을 써야겠다. 그러니까, 'Do what you love'라는 말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뜻도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는 뜻도 될 수 있는 것처럼.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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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새삼 위워크에서의 몇 달간 참 많은 사진들을 남겨놓았구나 싶어 몇 장을 덧붙여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