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바쁜 척'의 단계를 넘어섰음을 인정해야 하나. 지금도 고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준비해왔던 것, 계속해왔으나 운영 사정으로 잠시 쉬다가 최근 재개 예정인 것, 그리고 작년 말부터 추진 및 논의 중이었던 것을 신경 쓰는 통에 최근에는 감사한 제안을 생각 끝에 고사해야만 했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일은 미안함을 남긴다.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는 일이 필요하다.
*글 한 편을 쓰는 것도, 모임 하나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하지 않은 수고가 들어가므로, 지금은 탈잉을 통해 간헐적으로 하고 있던 원데이 클래스를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려를 하고 있다.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오히려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이 전업이었다면 지금처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시작만 하고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한 채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과 드라마들. 보고 싶은 영화들. 봤지만 또 보고 싶은 영화들. 봐야 하는데 시간을 내기 힘든 영화들. 쌓여만 가는 것들을 보면 막막함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지만 욕심을 버리지 않는 것, 시간을 그럼에도 쪼개어보는 것이 아직은 가능할 거라고 믿는 중이다.
*'바쁜 것보다 바빠 보이는 것을 더 잘하는 것 같다'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다녔더니 하나같이 '바빠 보이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해준 사람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내 걸음을 지지해주거나 응원해주는 이가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미약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대단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글쓰기는 철저히 혼자의 일이지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그래, 그 '바빠 보임'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일이 또 있다.
*그래서 오늘은 "계속 쓸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 물론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냥 한다. 어쩐지 그러면 계속 쓸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계속 쓰는 것도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무엇을 쓸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 일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계속 질문할 수밖에."라는 안미옥 시인의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후추' 부분, 『힌트 없음』에서, 현대문학,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