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un 28. 2020

진정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다시 보는 영화 '인턴'(2015)

"솔직히 난 그 문제를 건드릴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좀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어요, 가능하다면 말이죠."
(...)
"잠깐만요, 이걸 자기 책임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죠?"



'줄스'(앤 해서웨이)의 샌프란시스코 출장에 동행하게 된 '벤'(로버트 드 니로)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줄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줄스는 이 일이 자신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하지는 않을지 같은 막연한 걱정까지 벌써부터 하는데, 오지도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건 그만큼 당면해 있는 현재의 일이 주는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줄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남편의 관계에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고민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바람피운 걸 자기 책임이라 생각하지 말고 사장님은 사장님답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벤은, 답을 내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서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사람이며 나아가 '지금 당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이미 수십 년의 결혼 생활을 지나온 사람 이어서다.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벤과 아내에게도 행복한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줄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으리라. 잠깐 TV라도 좀 보자며 채널을 돌리는 줄스가 멈춰놓은 곳에서는 <사랑을 비를 타고>(1952)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진 켈리가 연기한 돈 락우드가 'You Were Meant For Me'를 부르는 장면. 이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던 벤은 잠시 뒤 줄스 몰래 안경을 벗고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줄스에게 벤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건 그가 오래 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삶이 뜻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걸 조금 먼저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짧은 장면을 통해 <인턴>(2015)은 현재의 벤이 타고난 캐릭터가 아니라 그 역시 지난한 과거를 거쳐온 사람이라는 점을 압축적으로 담는다.


진정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일까 자주 생각한다. <인턴>에서 본 벤의 모습은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발목 잡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그의 행복을 찾도록 이끄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조언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공감하는 사람. 벤은 단지 고령이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말하듯 매 순간 'Observant' 하고 'Sensitive'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유, 품격, 경청, 신념, 관대함.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성찰하는 사람은 성장한다. 어른은 그러기를 멈춘 사람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라는 사람이다. 자기 기준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 진정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일까 자주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인턴> 개봉 당시에 썼던 리뷰: (링크)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7월호: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lnk.bio/cosmos__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