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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6. 2020

명사형 인간이 아니라 동사형 인간으로 있기

2020년 상반기의 함축적 회고

"연애는 안 하냐"라든가 "일은 좀 어때", "어떻게 지냈어" 같은 말들을 듣는 일이 자주 있었다. "책은 언제 나오냐" 같은 말도 지나왔다. 비교적 최근의 말들이다. 직장생활을 짧지 않게 쉬었다는 것을 체감하느라 꽤 긴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이 길이 맞을까 돌아보고 또 돌아보느라 길 주변을 살필 여유 같은 건 허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름을 앞두고 생각나는 얼굴들과 이름들이 있었고 이따금 허락된 평일 저녁의 틈이나 주말 오후의 짧은 여유를 그 얼굴들 앞에서 보내기도 했다.


겨울은 나름대로 '바쁜 척하기'와 '실제로 바쁨'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보냈다. 그로부터 맞이한 봄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계절이었다.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돈을 번다는 것, 곧 일을 한다는 것과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 사이에서 타협하고 적정선을 찾는 법을 배워나가야 했고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아니라 조화. 그것을 터득하는 과정에 지금도 놓여 있다. 'N잡러'가 되고 싶다고 해왔지만 지금 따지자면 '1.2잡' 정도 될는지.



봄에는 '언제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될까' 같은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제는 '마스크 안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같은 생각을 더 자주 한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왔는데 배반적이게도 스스로에겐 결과물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조급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하고 있는 걸까'라든가 '잘할 수 있을까' 같은 물음도 떠나지 않았다.


마스크와 닿는 곳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일만큼이나, 상반기 내내 실은 많이 약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무엇 하나에 집중해보거나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그 욕심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느라 헤맨 시간들이 많았다.


최근 아껴 읽은 시집의 '시인의 말'에 이런 네 줄이 적혀 있다. '안녕, 짙은 밤의 조약돌처럼/ 희게 빛나는 모든 믿음들에게/ 안녕, 질주하는 나의 망상에게/ 안녕, 조립과 해체를 견디는 삶에게'. 시집은 유월 말에 나왔고 조금 일찍 주문한 그 시집을 손에 받아 든 것은 칠월 첫날의 일이다. 칠월의 한 주가 거의 지났고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들이 왔다.


여름을 앞두고 혈연의 죽음을 겪기도 했고 오랜 인연과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으며 오랜만의 연락이나 감사한 제안 같은 것도 있었다. 이제는 한창 여름이 되었다. 당장 눈앞의 일도 내다보기 어려워서인지 안부 하나가 반갑고 분에 겨운 박수나 갈채 하나가 소중하다. 오지 않은 것을 미리 생각하거나 지나간 것에 매여 있지 않기로, 다짐이나 약속 같은 것을 쉽게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서, '어떠한 상태'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음'이 앞으로를 매순간 살게 했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lnk.bio/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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