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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14. 2020

또다시, 극장과 OTT 사이의 경계에 관해

워너와 HBO Max에 입을 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DJ의 시네마 레터' 매거진은 매주 월요일마다 영화 박스오피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 106번째입니다.



작년 2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미국의 한 영화 시상식에서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요컨대 '극장 상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는 아카데미(Oscar)가 아니라 에미(Emmy)로 가야 한다는 것.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 작품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는데 이때 스필버그 감독은 집에서는 불가능하고 극장에서만 가능한 종류의 경험을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크고 어두운 극장 안에서 불특정 다수와 함께 경험하는' 것은 결코 집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 나도 아직까지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거스르기 힘든 대세인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극장은 제대로 문을 열지 못하고 사람들은 극장 대신 2차 매체를 통해 콘텐츠 감상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물론 디즈니 플러스, HBO Max, 아마존 프라임 등에 이르기까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물론 이 이야기, '극장과 극장 밖'의 경계에 대한 담론은 뜨겁고도 활발하게 현재 진행형이지만 여기 한 번 더 불을 지핀 것은 최근 <테넷>(2020)를 선보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다. 그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시네마와 필름을 옹호하는 감독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일 텐데, 최근 워너브러더스2021년도 자사 라인업 전체를 극장과 HBO Max를 통해 동시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높은 수위의 비판을 내놓았다.


영화 '테넷'의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The Hollywood Reporter'에 따르면 놀란 감독은 HBO Max를 '최악의 스트리밍 서비스'라 언급하며 위와 같은 워너의 결정이 영화 제작자들과 관계자들을 존중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이 결정으로)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분화가 아니라 역기능이다(영화 산업을 해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다시 말해서 현재 극장 상황을 코로나 19 이전의 극장 상황과 그로부터의 흥행을 평가하는 기준과 동일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의 최근작 <테넷>은 국내에서 199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포함해 전 세계 극장 수익 3억 6,13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제작비 등을 감안하면 극장 상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사실상 여름 시즌을 이끌 거의 유일한 텐트폴 무비였던 <테넷>이 당시 극장 분위기를 이끌어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워너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의식해 극장 상영만으로는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해 이와 같은 결정을 했으리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2021년 라인업에 포함된 각 영화들의 이해관계자들과 제대로 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예컨대 <고질라 vs 콩>과 <듄>을 워너와 공동 제작한 레전더리 픽처스가 이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고, 드니 빌뇌브 감독과 존 추 감독 등 워너 라인업의 관계자들 역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반응을 의식한 것인지 워너브러더스 측은 <원더 우먼 1984>의 패티 젠킨스 감독과 관계자들에게 <원더 우먼 1984>가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0억 달러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영화 '원더 우먼 1984'의 패티 젠킨스 감독과 배우 갤 가돗


최근 디즈니 인베스터 데이 행사에서도 마블은 향후 디즈니 플러스로 독점 공개되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대폭 강화한 모습을 보였다. 각 OTT 사업자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과 더불어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중심으로 한 신흥 강자들과 기존 극장 사업자들 간의 대결은 코로나 19를 계기로 비로소 본격화되는 모양새. 최근 여러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2021년에도 당분간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극장과 OTT 사이의 경계와 그 논쟁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리고 내년 이후의 상황에, 이 이야기를 향한 관심과 잡음들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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