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았고, 평생 그 일에 몰두했다. 음악가의 수업을 빗대어 말하자면 이론상 우리도 마이어가 보았던 세상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윌북, 2015)의 서문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현상된 필름만 10만 장, 미현상된 700롤의 컬러 필름과 2,000롤의 흑백 필름, 그리고 무수히 많은 쿠폰, 메모, 전단, 버스와 기차표 등을 생전 남겼다. 자기 목소리를 담은 수십 개의 녹음테이프, 150편이 넘는 8mm, 16mm 필름 영상도 물론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마이어의 사후에 발견되었다. 시작은 존 말루프가 380달러에 한 경매에서 낙찰받은, 필름 뭉치가 든 큰 상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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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수집가 존 말루프가 처음 마이어의 사진 일부를 접한 건 2007년이었다. 두 명의 동료 수집가와 함께 그것의 일부를 온라인에 공개했으나 그때는 전혀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마이어가 죽은 지 6개월 후인 2009년 10월, (물론 그것을 몰랐던) 말루프가 플리커에 다시 올린 마이어의 사진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열리게 된 시카고 문화센터에서의 전시는 그곳에서 열린 역대 전시 중 최다 관람객을 동원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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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작품과 삶이 생전 얻지 못했던 명성을 얻는 일에 대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면서, 자연히 기록하는 일과 그것을 발견하고 읽어내는 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비비안 마이어는 엄청난 수집가이자 기록가였고, 존 말루프는 정리하는 것과 정보를 찾아 나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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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셔츠 차림에 큰 코트와 펠트 모자, 부츠를 착용하고 다녔고 평생 가사 도우미나 유모로 살았지만 주변에서는 '지적인 사람'으로 기억했던 사람. 그는 방대한 자기 작품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생전에는 공개되지 않기를 바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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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차에 탔을 때처럼 남의 자릴 만들어줘야 해요.
좌석 끝으로 가줘야 다른 사람이 와서 앉죠.
이제 여기까지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러 가야겠어요."
(비비안 마이어, 1926.02.01.~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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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를 처음 극장에서 만났던 2015년이 아니라, 지금에 와 이 작품을 다시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아득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5년 하고도 반이 지나는 동안 내 삶은 어떻게 흘러왔고, 또 어느 쪽으로 이어질까. 이렇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관해 기록하는 일이, 내가 세상에 없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아니, 여전히 존재할까.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가치 있는 것이 될까. 내 글은 나 좋자고 쓰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약간은 가지고 있다고 해두는 게 그래도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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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페르난두 페소아)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며 훗날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이 존재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김애란)라고 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다시 보며, 매 순간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하며 예술 창작 행위로서 스스로의 삶의 방식과 방향을 정립해 나가는 이의 마음을 생각했다.
(2015년 4월 30일 국내 개봉, 84분, 전체 관람가.)
여담: 왓챠에서 코멘트를 보다 보니 이런 언급이 보인다. "어쩐지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를 들춰내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걸 합리화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존 말루프가 이 작업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것은 꼭 나쁜가. 손해를 보고 어려움 속에 작업하는 것만 좋은 것이고 부와 명성을 얻는 일은 속물적이고 합리화의 일인 것인가. 존 말루프가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가장 먼저 접한 건 그의 '부고'였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흔적을 수소문해 수십 년 전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를 일일이 찾아 지역번호도 모른 채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걸고 각 미술관과 박물관에 수소문했으나 받아줄 곳이 없다고 해 자기가 직접 아카이빙을 시작했으며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만나러 다니고 비비안 마이어가 가사 도우미나 유모로 일하는 동안 고용주이거나 아이들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창고 몇 개를 채울 만큼의 방대한 유품을 하나하나 살피고 수천 롤의 필름을 인화했을 수고는 그저 공짜로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실는지. 그렇다고 해도, 평생 매체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미디어에서 주목하지도 않을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삶 중에서 누군가의 삶이 이야기로 알려지고 그것이 또 누군가의 영감이 되고 나아가 누군가의 삶의 방식과 예술관에 영향을 주는 일이 '이익'과 '합리화' 같은 키워드로 다 축약될 수 있다고 보실는지. 나는 '같기도 하고'나 '나만 그런가'나 '아니면 말고' 같은 말을 달고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조금만 더 숙고를 거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기록하는 일과 기록을 들여다보고 발굴하는 일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