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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09. 2021

'주동우'라는 모든 얼굴들과 나

넷플릭스 영화 '먼 훗날 우리'(2018)

“우리는 시궁창에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별을 바라본다.”

- 오스카 와일드,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에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원더스트럭>(2017)에서 재인용)  



어둠은 빛의 부재이고 그 빛이란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는 <원더스트럭>(2017)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했었다. 극장에서만 세 번을 관람했었던. 저 말을 <소년시절의 너>(2019)를 보면서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도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직접 오스카 와일드라고 명시되지는 않지만 “하수구에 살아도 별은 볼 수 있다”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앞서 적은 저 인용이 뇌리에 스쳤던 것이다. 그 순간 영화의 주연배우 주동우(Zhou Dongyu, 저우동위)의 얼굴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가 주연한 전작인 넷플릭스 영화 <먼 훗날 우리>(2018)의 편린들을 한 번 더 꺼내볼 수밖에 없게도 했다. 아니, 이것도 세 번은 꺼내야 하나.


먼 훗날 우리. 분명 우리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아니라 머나먼 그들이 될 수밖에 없었을 관계. <먼 훗날 우리>의 시작은 2007년 춘절 귀향길에 처음 기차 안에서 만난 ‘팡샤오샤오’(주동우)와 ‘린젠칭’(정백연)의 대면을 그린다. 이 장면은 컬러다. 조금 후, 영화는 10년 후. 그러니까 영화상의 현재로 건너뛰고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은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중도에 운항할 수 없게 되어 같은 숙소를 쓰게 되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흑백이다.



현재를 흑백으로 과거를 컬러로 채색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영화를 다시 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컬러가 도입되기 이전의 영화가 아니라면 보통 흑백은 먼 과거를 그리거나 과거가 아니어도 어떤 향수를 자극하는 의도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러니까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의 모습을 흑백으로 담았다는 건 적어도 두 가지 생각은 하게 만드는 것. 두 사람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제 둘은 어떤 사이인 것일까.


영화 '먼 훗날 우리' 스틸컷


<먼 훗날 우리>는 바로 이런 구성 때문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나 <나의 소녀시대>(2015) 같은 국내에서 비교적 흥행한 다른 중화권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소재나 화법 자체가 상이하다기보다는 상술한 도입부를 포함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 때문인데, 같은 이야기여도 현재 시점에서 차근차근 선형적으로 따라갈 때와 이미 이야기가 어느 정도 흘러간 시점에서 회고할 때 느끼는 감정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넉넉하지도 않고 미래도 불투명하던 시절. 그러나 훗날의 자신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금 이 순간만이 좋았던 나날들로 채워진 시절.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은 수많은 인파들로 빼곡한 귀향길 기차 안에서의 재회 후 같은 공간 혹은 환경에 계속해서 머물게 되지만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나머지 한 사람도 상대를 향해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같다. 쉽게 들켰다가 이 관계가 지금보다 더 멀어지게 될까 봐. 더 가까워질 계기 같은 건 찾아오지도 않게 될까 봐.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바로 그 때. ‘팡샤오샤오’가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친구와 이별한다든가, 동업하던 ‘린젠칭’의 동료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뿔뿔이 흩어진다든가 하는 일들을 거듭하며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은 마침내 서로가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은 둘도 없는 관계로 발전해간다.


‘먼 훗날 우리’라는 제목. 시간이 좀 더 흐른다면 뭔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무한정 다시 물어본다 한들 덧없는 물음에 그칠 거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행복이 될 수 있는 한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누구나 갖게 되는 것처럼 지난 선택에 대해 때때로 후회하거나, 혹은 후회의 단계까지는 아니어도 ‘무엇인가 하나라도 조금 달랐다면’ 하고 여러 경우의 수와 선택의 인과들을 거듭 따져보기 마련이니까. 이런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단연 ‘주동우’라는 영화의 얼굴이다. 영화 속에서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처음 그대로인 것만 같은 그 무구한 얼굴로, <먼 훗날 우리>의 관객은 그저 주동우의 표정과 내면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먼 훗날 우리>의 주동우, 그리고 ‘팡샤오샤오’를 말하기 위해 또 다른 얼굴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정백연이 연기한 ‘린젠칭’에 <먼 훗날 우리>의 서사가 언뜻 무게를 좀 더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해서. <먼 훗날 우리>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특정 주인공이나 인물 한 명의 입장보다는 십 수 년의 시간을 두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천에 주안점을 둔다. 그러니 ‘팡샤오샤오’를 말하기 위해 ‘린젠칭’ 이야기를 동시에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 한 편의 영화 안에는 남녀 사이의 우정과 사랑은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여러 복합적인 감정에 이르기까지 119분 정도의 그렇게 길지는 않은 상영시간 안에 입체적인 관계들이 가득 담겨 있다. 주동우가 연기한 ‘팡샤오샤오’에 더욱 심적으로 몰입해 감상하기는 했지만 정백연이 연기한 ‘린젠칭’을 중심으로 두고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영화 '먼 훗날 우리' 스틸컷


‘린젠칭’은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아빠를 졸라 ‘커맨드 앤 컨커’ 정품을 비싼 돈 주고 산 일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 자기가 쓴 시나리오로 게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꿈꾸는 사람. 시작은 물론 초라했다. 어느 전자상가에서 각종 컴퓨터 부품 및 게임 타이틀을 판매했고 동업하던 친구들이 떠나는 등의 상황 속에서는 지하보도 등을 전전하며 소위 ‘해적판’이라 불리는 불법 타이틀까지도 손을 댄다. 생계를 위해서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무작정 베이징으로 상경한 뒤, ‘팡샤오샤오’와 동거의 관계를 이어가게 되면서 처음부터 ‘팡샤오샤오’를 좋아하게 되었을 ‘린젠칭’은 혼자서 많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문제는 실제 감당해야 했을 만한 정도의 것보다 그는 훨씬 더 그걸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훗날 ‘린젠칭’은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만큼 노력했는데 이제 네가 없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향해 ‘팡샤오샤오’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야.”라고 답한다. 물론 이건 두 사람이 어느 순간 헤어진 뒤 일정 시간이 흐른 뒤의 대화이지만. 결과적으로 당겨 말하면 ‘린젠칭’은 자신의 곁에 항상 있었던 ‘팡샤오샤오’가 무엇을 원하고 자신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좀 더 사려깊게 헤아렸어야 했겠지. 그리고 관객은 그걸 알고 있는 채로 둘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


자신의 과거 선택들을 돌아보고 슬퍼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시절을 함께한 ‘팡샤오샤오’에게 애착과 미안함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철없던 자신을 말없이 염려하고 살펴주었으며 아픈 일을 모른 척하기도 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까지 갖고 있는 ‘린젠칭’의 얼굴을 1989년생의 정백연은 담백하고 호소력 있는 연기로 보여준다. 만약 <먼 훗날 우리>가 극장 개봉작이었다면 예컨대 왕대륙처럼 꽤 인기 있는 중화권 배우로 팬층을 형성했을 거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비좁은 단칸방에서, ‘린젠칭’이 노트에 초안으로 쓰고 그리는 중인 게임 시나리오 뭉치를 보며 ‘팡샤오샤오’가 자기 의견을 덧붙이는 장면이 있다. (린젠칭-팡샤오샤오 순)


“남자 캐릭터 이름은 이언.”
“그럼 여자는 켈리겠네. (…) 근데 왜 이렇게 줄거리가 평탄해?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기만 하잖아.”
“불행하면 우여곡절이 생기지.”
“우리는 우여곡절이 없으면 좋겠다.”
“그러게.”
“잠깐, 궁금한 게 있어. 이 게임 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못 찾으면 어떻게 돼?”
“이언이 켈리를 끝내 못 찾으면 세상이 온통 무채색이 되지.”


영화 '먼 훗날 우리' 스틸컷


이 대화 직후에 영화는 다시 2018년 현재 시점의 흑백(무채색) 장면으로 전환돼 마치 대화가 위의 ‘린젠칭’의 말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점도 있지만, 주동우의 얼굴과 그의 연기 방식이 위와 같은 대화의 감정 흐름에 아주 최적화돼 있다. 어떤 감정에도 맥락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 예컨대 우리 사이에 우여곡절, 즉 불행 없이 앞으로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갑자기 하면 경우에 따라 그 맥락이 부자연스럽거나 돌출된 인상을 줄 수 있고 이런 일상적인 대화에 소위 ‘명대사’ 스러운 말이 포함돼 있으면 그걸 살리기 더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주동우의 표정과 발화는 그 모든 것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 <소년시절의 너>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먼 훗날 우리>에는 그게 한층 깊이 담겼다.


또 다른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한 사랑을 나누면서 “지금이 이렇게 행복한데 과연 우리가 헤어질까?”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보며 그를 안은 채 미소 띤 채 꺼낼 수 있는 것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상적인 발화에 작품을 다 보고 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메시지를 부여하는 힘이다. 자기 색깔과 아우라가 있는 동시에 어느 장소와 환경과 사람에나 어울릴 것 같은 친근하고 무구한 모습으로.


소위 ‘남친짤’, ‘여친짤’처럼 부르는 어느 연예인들의 모습에 바로 그런 힘이 있다고 느낀다. 그 얼굴이 만들어내는 모든 표정들이, 그걸 보는 사람들 저마다 생각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어버리는 일. 그리고 대체로 그건 현재가 아니라 과거 누군가의 어떤 얼굴이겠지. <먼 훗날 우리>가 끝난 뒤 자막으로 나오는 “소중한 사람을 잃기 전에 미안하다고 말하세요.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같은 교훈적이고 상투적인 문구마저도 (정백연의 얼굴과 함께) 주동우의 얼굴로 지금까지의 십 수 년에 걸친 이야기를 모두 접하고 난 뒤의 일이라면 더 이상 상투적이지 않게 된다. 어떤 선택 하나가 한 세상을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훗날 생각하게 되는 일이.


영화 '먼 훗날 우리' 스틸컷



넷플릭스의 <먼 훗날 우리> 공식 예고편은 꽤 잘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우여곡절이 없으면 좋겠다”라는 그 대화에서 시작해 2007년부터 매년 조금씩 달리 덧붙여진 자막이 진정 중요하게 다가오는 요소다. 2007년 ‘우리는 만났다’에서 시작해 ‘우리는 가까워졌다’, ‘우리는 사랑했다’, ‘우리는 다퉜다’, ‘우리는 상처받았다’, ‘우리는 이별했다’를 거쳐 ‘그리웠다’, ‘사무쳤다’, 연민했다’를 지나 2017년 ‘우리는 재회했다’에 이르기까지. 나열한 저 문장들만 놓고 보면 그 어떤 연애담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너무 뻔한 말이라서 말이다. 처음 만나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만으로 모든 게 좋고 전부 다 해결되는 건 아니어서 다투게 되고, 상처가 아물 수 없을 만큼 쌓이면 그 사랑을 포기하거나 지속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헤어지고 나서 분명 그리워하거나 후회하는,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는.


<먼 훗날 우리>의 강점은 바로 그 ‘보통의 연애’와 그 당사자를 연기하는 보통의 얼굴들에 있다. 결국 좋은 사랑 이야기, 공감할 만한 사랑 이야기라는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스크린 안의 특별한 두 사람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만나고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되고 역시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으로 이별하고 앓아야 만들어지는 진귀한 것이 아니니까. 무구하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보이면서 그 얼굴로 생생하고 세밀하게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들과, 과한 욕심과 의욕을 앞세우지 않은 담백하고 익숙한 각본, 알맞게 감정을 고조시킬 줄 아는 균형 잡힌 연출에 이르기까지.


<먼 훗날 우리>는 중국에서 극장 개봉을 거친 뒤 국내와 북미 등에서는 넷플릭스로 공개된 작품이다. OTT 서비스에 앞서 극장 수익으로만 13억 위안, 우리 돈으로 2,200억 원 정도를 벌어들였을 만큼 <먼 훗날 우리>는 일단 자국에서 아주 성공한 케이스. 그 해 중국에서 개봉한 가장 성공한 멜로 영화로 기록되었을 정도. 영화 말미에는 ‘린젠칭’이 아버지를 향해 쓴 편지의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펼쳐지는데 이 점 역시 가족적 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한 아시아권 관객에게 유효했을 것.



만약 2007년부터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큰 변곡 없이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따라갔다면 이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고 뻔해질 수도 있었다. 그때는 주동우와 정백연이 아무리 좋은 연기를 했어도 결과물은 밋밋하게 다가왔을 것.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이자 흑백 시점에서 과거이자 컬러 시점을 회상하는 일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맥락으로 만든다. 단지 플래시백이 아니라 같은 호텔에 묵게 된 '린젠칭'과 '팡샤오샤오'가 과거 주요 시점들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진짜 그렇게 말했었단 말이야?” 같은 식으로 지난 일을 상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짜여 있다.


게다가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미화할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자신이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반추하는 쪽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에게 10년 전과는 같은 모습으로 함께 있을 수는 없다고, 시간의 경험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다만 앞서 서술한 것처럼 각자에게 혹은 상대를 향한 질문(들)이 남는다. 실제 일어난 일과 조금, 아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선택과 행동이 일어났더라면. ‘그날 그 때 그 지하철을 탔더라면’ 같은 사소한 일조차 돌아보게 된다는 건 그만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겠지.


영화 '먼 훗날 우리' 스틸컷



누구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할 수 있다. 지난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이 남는 일도 얼마든지. 다만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건, 진정 오랜 관계를 만드는 건 서로가 좋은 일이 있을 때가 아니라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어떤 모습으로 곁에 있느냐 하는 데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어려움도 함께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도 사실은 두 사람이 가장 결정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였으니까.


게임 시나리오 개발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억지로 게임 유저들을 응대하는 상담사 일을 하던 시기의 ‘린젠칭’도, 부동산 중개 일을 하면서 무례한 고객들과의 일로 스트레스가 쌓여 가던 ‘팡샤오샤오’에게도. 충분한 대화 대신 각자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하는 동안 무심코 뱉은 말이 오해가 되고 어느 순간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보다 쉽게 포기하려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였다.


물론, 무엇이든 극복하고 결국 결실을 맺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성숙하지 못했고 사려 깊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또 과거의 이름이 된 누군가를 한 번쯤 아련한 듯 떠올려보게 만드는 일. <먼 훗날 우리> 같은 영화를 볼 때 그것은 가능하다. 이런 영화 속 주인공의 모든 얼굴들은, 결국 내 어느 날의 표정이기도 했을 테니까. 이 영화를 보게 될 당신의 표정과 마음은 어떨까.


영화 '먼 훗날 우리' 스틸컷

https://www.netflix.com/title/80993655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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