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나 모임 제안 등으로 연락을 나눌 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아, 직장 다니고 계셨구나”와 “헐, 직장인이셨어요?”로 나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나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할 이야기 타래가 여럿 있지만, 나름대로는 좋은 신호로 여기고 있다. 그만큼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일 테니까.
기한 내에 제출하고자 했던 글 하나를 내일 대신 내년으로 기약한 날이었다. 원고지 50매 정도의 글도 정말 빠르게 작정하고 쓰면 하루에 완성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도저히 그럴 만한 시간을 마련할 수 없었다. 준비해야 할 모임이나 강의들, 그리고 몇 가지의 외주 성격의 일을 맡다 보니 요즘으로 말하면 새로 무엇인가 제안이 들어오면 ‘하자!’보다 ‘할 수 있을까?’가 먼저다.
오늘이 바쁠 수 있는 건 과거의 내 탓(?)이겠지만, 어쨌든 나날이 내일의 나에게 응원을 보내며 내일 쓰는 사람일 수 있기 위해 오늘도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기억을 새기기 위해 대략 적자면 준비 중인 모임 둘, 준비 중인 강의 셋, 쓰고 있는 원고 셋과 써야 할 원고 하나. (무엇인가 빠뜨린 것이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미 ‘실제 바쁜 것보다 더 바빠 보이는 것뿐’이라는 자평은 (그것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공간에 게시물을 올리는 일의 자연한 특성이지만) 하기 어려워졌다. 누군가 “직업이 몇 개세요?”라고 물으면, “직업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그렇다면 나는 몇 개의 일을 (지금)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이)지?”가 뒤따른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을까.
실은, 더 단단히 마음을 먹어 본다면 현재보다 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건 바쁨의 정도를 실제 그러한 것보다 크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일과를 마치고 난 뒤 씻고 자리에 앉았을 때 문득 찾아오고는 하는, 그 경우 모를 헛헛함 같은 것을 생각하자면.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