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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24. 2021

가치 있는 기록을 만드는 방법

구체적 단서로서의 기록 남기기

지금 쓰는 기록이 훗날 가치 있는, 대단한, 쓸 만한, 이런 단어들을 앞에 붙일 만한 뭔가가 될까? 쓰는 순간에는 알 도리가 없다. 많은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가 부여되거나 생각지 못한 데서 가치가 생겨나기도 한다.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루틴을 만드세요!!”, “계속 써보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능한 가치 있는 쪽으로 기록이 만들어지는 방법을 말해야겠다.


훗날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 되기 위하여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에 위와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가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217쪽)이므로 가능한 관념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쓰는 게 소설 쓰기에 있어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김연수가 말한 것처럼 인생도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그날 그날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 즉 순간에 충실한 것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그게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떠올릴 수 있는 단서가 필요하고 단서가 되기 위해서는 구체성이 중요하다.


https://brunch.co.kr/@cosmos-j/1310


예를 들어서 극장에서 재미있게 본 영화에 대해서 말해볼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가령 “톰 크루즈 액션 쩌는 영화였다! 즐감!” 이렇게 썼다고 하면,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어떤 영화였는지 알 수 있을까? 톰 크루즈가 나온 액션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외에도 아주 많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 문장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되기 위한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그 영화의 감독은 누구인가? (‘액션이 쩐다’라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그게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의 영화인지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2018),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등), 더그 라이만 감독의 영화인지(<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인지(<우주전쟁>(2005),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등)
2. 톰 크루즈가 총을 쏘는가? 주먹을 쓰는가? 운전을 잘 하는가?
3. 그 영화를 본 극장은 어디인가?
4. 누구랑 같이 봤나?
5. 그날 날씨는 어땠나?


이 내용은 전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영화에 관해 원고를 쓰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하는 나한테 필요한 것이다. 수많은 영화들 중 특정한 ‘바로 그 영화’에 대해 꼽을 수 있는 단서가 가능한 구체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영화 기록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의미가 부여된다는 건 기록의 가치가 전적으로 그것의 ‘역사성’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기록이 쌓여갈수록 그 각양각색의 기록들 사이에서 특정한 무엇을 구분해낼 수 있는 단서가 필요해진다. 아카이브가 되려면 단지 기록이 쌓여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 중 내가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목적으로 원하는 ‘어떤 것’을 그 기록들의 바구니 안에서 쉽게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디지털 매체에 기록하는 일이 그 자체로 장점을 획득하기도 한다.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영화 기록을 주로 하고 있으므로 그 특정한 영화에 대해 기록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많이 남겨둔다. 1) 그 영화를 본 날짜, 시간, 장소, 혹은 같이 본 사람(있다면), 혹은 그날의 날씨나 내 기분 2) 감독이나 배우, 혹은 음악감독이나 촬영감독 등 그 영화를 특정할 수 있는 고유명사 3) 기억에 남았던 대사 4) 각인되었던 장면


영화마다 무수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있어서 위 내용은 그야말로 예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고맙게도 기록을 도와주는 여러 플랫폼들이 있다. 프롤로그에 쓴 ‘왓챠피디아’ 같은 애플리케이션도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영화에 내가 몇 점의 별점을 부여했는지도 기록의 일부가 된다.



여러 기록 정보들의 범주화, 그리고 기록 수단들 간의 ‘크로스체크’


글쓰기만 기록이 되는 건 아니다. 사진을 찍거나 캘린더에 뭔가를 써두는 것도 좋은 기록이 된다. 내 사소한 버릇 중 하나는 문득 ‘1년 전 오늘’ 같은 흔적을 찾는 것인데, 스마트폰 카메라에 저장되는 사진들은 저마다 ‘찍힌 날짜’가 남고 경우에 따라서 그것을 찍은 위치 정보가 남는다. 사진첩을 보다가 문득 ‘작년 오늘의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따위가 궁금해지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떤 하루엔 기록이 있고 어떤 하루엔 기록이 없다. 마치 인증샷처럼 영화 관람 티켓을 찍은 사진도 있고 그날의 날씨를 연상할 수 있는 하늘 사진이나 풍경 사진도 있다.


말하자면 특정한 하루를 복기할 수 있는 보조 수단이 글을 통해서도 사진을 통해서도 존재하는 거다. 더불어 캘린더 앱에 누굴 만났는지, 어떤 영화를 어디서 봤는지와 같은 간단한 정보를 써두는 것도 좋다. 스스로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저장 매체들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찾아준다. 내 경우 캘린더 앱에는 기록의 성격에 따라(영화 관람, 친구 약속, 그날 할 일 등) 색깔 구분을 하고 사진첩에서는 폴더 구분을 적극적으로 한다. 가령 ‘내 사진’ 폴더가 있고 ‘스크린샷’ 폴더가 있고 특정한 누군가와 대화 내용 중 일부를 캡처해 둔 폴더가 있고 영화 스틸컷이나 포스터를 저장해 둔 폴더가 있다. 찾고 싶은 사진이 있을 때 그것을 가능한 ‘접근성 높은’ 상태로 유지해두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그 결과 글을 통해 명확히 찾아지지 않는 것은 사진으로, 반대의 경우는 글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디지털 매체 기록의 장점


위 내용들은 전적으로 디지털 매체를 통한 기록을 적극적으로 행할 때 생겨난다. 가령 종이 일기장에 쓰는 기록은 훗날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 중 특정한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수단이 날짜 말고는 사실상 없다. 1년치 기록을 쓰는 다이어리가 몇 권이 되었다고 할 때, 인간의 두뇌로 그것들 중 특정한 무언가를 곧장 찾아낼 수 있을까? 선명한 것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쉽사리 희미해진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스마트폰이나 PC에 써두었다면 찾기 쉬워진다. 상기 언급한 것들을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정한 연도나 월/일, 혹은 키워드, 고유명사, 날씨 같은 것들.


 내 경우 디지털 매체를 쓰는 건 동기화 때문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남긴 기록은 노트북에서도 같은 앱을 통해 검색해서 찾을 수 있으며, 특정한 단서를 통해서 원하는 내용을 되살려내기도 용이하다. 가령 내 ‘에버노트’ 앱에서 ‘김연수’를 검색하면 총 135개의 노트가 나온다. 그가 쓴 소설이나 산문집에서 마음에 든 문장을 메모해놓은 경우도 있고 그의 책들에 대해 감상이나 리뷰를 쓴 노트도 있다. 혹은 일기나 영화 감상을 쓰다가 간혹 김연수의 문장을 인용해놓은 경우도 있다. 이는 색인의 기능만을 담당하는 게 아니라 통계적 유의성도 있다. 가령 에버노트에 저장된 5,100여 개의 노트 중 135개 그러니까 2.5퍼센트 정도의 노트가 ‘김연수’를 언급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내 취향과 선호를 나타낸다. 쌓여간 기록들 중에서 특정한 단어를 검색해 보면 간혹 놀라기도 할 것이다. 가령 ‘퇴사’와 같은 단어를. 언젠가 기록을 범주화(Categorizing)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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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및 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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