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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21. 2016

책으로 만나 사람으로 가까워진 곳

북티크에 처음 갔던 날


작년 5월 말, 짧은 시간 접했지만 금세 서로의 글과 문장을 아끼게 된 한 지인으로부터 어느 모임에 가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와인 북파티. 간단한 다과를 곁들이며 책과 사람을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는 친목 모임. 나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거나, 처음 보는 이들과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마침 그날 저녁, 다른 일정이 있지 않았고 한 번쯤 가도 나쁠 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사전에 신청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일에 그 분의 이야기만 듣고 선뜻 장소를 찾아갔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없어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찾은 이 낯설고도 흥미로운 장소를 둘러보며 기다리던 사이 하나 둘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테이블 위에 다과와 잔들도 놓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이가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며, 어디에 사는지, 그런 것들에 연연한다. 대외활동을 이끌면서 면접을 진행할 때에도, 지원자들은 무슨 학교에 재학 중인 몇 살 누구라며 본인 소개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어릴 때부터 그런 방식에 길들여져 있었을 테다. 그러다 보니 익숙해지면서도 자연히 그런 식의 신상 명세식 소개에 사람들은 지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보다는 그 사람이 무슨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그러한,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몇이나 있을까.



그날의 모임은 오로지 책이나 취미와 같은 각자의 관심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들만이 오갔다. 굳이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세계와 시각에 흥미롭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소개해준 것이 기쁘고 고마웠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독서모임에 등록했다. 나는 토요일 아침과 월요일 저녁에 언제나 그곳을 찾았고, 점차 생각날 때마다, 시간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얼굴 도장을 찍게 되었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책을 읽고 후기와 생각을 나누는 모임의 본 취지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팸'이라는 이름으로 더 소중한 이들이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처럼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매번 반갑게 맞아주고 챙겨주는 그들이 너무나 고맙고 각별하다.



삶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찾아오는 많은 우연들의 연속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미지의 힘. 나는 내일을 만들어내는 그것들을 믿고 사랑한다. 작년 5월의 그날 마침 다른 일정이 있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선택으로 지금껏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며 누릴 수 있었다.



달마다 방 안의 책장은 빼곡히 들어차기 시작했고, 고마운 기회로 나는 그곳에서 매주 영화 한 편을 직접 선정해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도 하였으며 계절이 한 번 정도 바뀔 무렵 나의 당신의 이름도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게 되었고, 다른 이들의 취향과 관심사에 나도 흥미롭게 마음이 이끌려 물들기도 하였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우리는 서로의 책을 읽었고,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고 이별도 하며, 생일을 맞이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북티크는 얼마 전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은 지금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구성원이 생기기도 하였고 다른 모임들도 많이 생겼다. 북티크에서 처음 책으로 만난 우리들은 이제 사람으로 만나고 정으로 함께이다. 1년 사이 계절도 몇 번 바뀌었고, 공기도 다르다. 그래도 이 공간과 이 사람들, 지금처럼 오래도록 편안하고 소중한 모습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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