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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10. 2016

일의 계절

처음 출근했던 날은 뚜렷하게 도맡아서 하는 일도 없이 그저 분위기 파악만 하기에도 하루가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매일 무슨무슨 일을 했는지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정신이 없다. 사는 건, 먹고 사는 건,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 언제나 치열하고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거구나, 혹은 바빠야 하는 거구나. 일을 하고 나서 찾아온 가장 여유로운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렇다. 정해진 시간에 혹은 그보다 일찍 퇴근하고 저녁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바쁜 한때는 보낸 후의 그 낯선 여유라니.


다음 일주일은, 다음 한 달은 어떤 일들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평일에 공휴일이 하나 정도 비집고 들어와 있는 것도 새삼 은근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내 시간이 찾아온다면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 영화도 좀 더 보겠지. 주어진 시간을 애매하게 흘려버리면 그렇게 아깝고 짜증이 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사적인 생각이나 딴짓 같은 것들을 다 배제하고 일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어느덧 걸음을 재촉하면 이마에 땀이 맺히고 옷을 가볍게 입기도 껴 입기도 애매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5월은 금방 찾아오고, 지금보다 더 더워지겠지.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에 연연할 필요조차 없이 스스로가 가장 먼저 느낀다. 날씨보다 덥다고 느끼거나, 불편하거나, 다른 옷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옷에도 계절이 있는 것처럼 일에도 계절이라는 것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내 일은 그 계절로 따지면 이제 막 싹이 조금 자라서 줄기가 차차 굵어지기 시작한 그런 계절일 것이다. 조금 맺히는 땀을 가볍게 닦아내고, 불어오는 바람과 일교차를 적당히 고려하기 시작하는 계절. 이 시기는 짧고 금세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이기에 앞도 내다볼 줄 알아야 하는 계절. 아직 당장 해야할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여념이 없는 내 일은 아직 봄을 벗어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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