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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04. 2021

콘텐츠 홍수 속에 어쩌면, 정말로 필요했던 작은 여유

시즌(seezn) 오리지널 영화 ‘어나더 레코드’(2021) 리뷰

"안전하고 또 편안하게, 평온하게 지내되 가끔씩은 용기를 내야 할 타이밍에 필요한 용기를 내고 낯선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모험을 떠나야 할 타이밍에 떠날 줄도 아는 그런 균형감을 잘 유지하는 게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인 것 같아요."


영화 '어나더 레코드' 스틸컷


사소한 것에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알고, 타인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고 명료하게 또렷한 언어로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있다. 골목의 그늘과 빛을 천천히 포착해내고 배우에게서 숨은 이야기를 이끌어낼 줄 아는 연출가가 주는 신뢰가 있다. 김종관 감독과 신세경 배우가 협업한 즌(seezn) 오리지널 영화 <어나더 레코드>는 서촌의 식당과 카페 등을 배경으로 배우와 그가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고루 따라가고 관찰한다.


어느 칵테일 바에서는 세경이 일본에서 만났던 인연과의 재회에 신기해하고 거기서 카메라 뒤편에 있던 감독이 자연스럽게 바텐더의 자리에 동석한다. 커피와 티를 내어놓는 쇼룸에서는 사장 부부의 연애담과 타향살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세경이 있고, 또 어딘가에서는 반려견을 키우는 마음과 배우로서의 커리어 고민을 타로로 풀어주는 이가 있는데 그 역시 배우이고 타로를 독학했고 세경과 동갑이다.


영화 '어나더 레코드' 스틸컷


수시로 개입하는 것은 감독과 카메라를 향하여 인터뷰이가 되는 세경의 이야기다. 어떤 대목에서는 다큐멘터리가 되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마치 브이로그처럼 배우의 스크린 바깥 일상을 담아내는가 하면 지역 상권 곳곳에서 자기만의 뜻과 양식으로 터를 이루고 있는 이들의 웃음과 노동을 헤아리기도 한다.


그래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어나더 레코드>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한다. 글자 그대로, 이것은 단지 하나의 또 다른 기록이다. 근래에 [런 온](jtbc, 2020)을 시청한 입장에서는 영화 곳곳의 ‘걷는 장면’들에서 이미 오랜 시간을 달리고 걸어온 직업인의 빛과 그늘을 본다. <조제>(2020), <더 테이블>(2016) 등을 관람한 입장에서라면 김종관 감독이 매번 공들여 담아온 시공간의 정제된 미장센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이 극장 개봉작이 아니라 시즌(seezn) 오리지널로 공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베테랑 감독과 배우가 빚어낸 또 다른 소품처럼 여겨지는 면도 있다.


영화 '어나더 레코드' 스틸컷


배우의 커리어 이면을 풀어낸 좋은 다큐멘터리는 이미 여럿 존재하는데, <어나더 레코드>는 배우 본인이 주인공인 듯하면서도 그가 만나는 식당이나 카페 주인들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관객/청자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에 적극적인 질문의 태도와 호기심을 갖고 훌륭한 인터뷰어이자 인터뷰이가 되는 신세경의 활용은 애써 공들인 영화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어나더 레코드>의 시작과 끝에는 동일한 장소가 있다. 바에서의 밤, 그리고 그곳의 또 다른 밤. 그곳의 손님이 되어 또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를 공유받을 기회로 보는 이를 이끈다. 서촌 일대를 자주 다녀본 이들에게는 친숙한 공간과 장소가 적지 않은데, 나 역시 <어나더 레코드>를 시청한 날 작중 등장했던 곳들을 걸었다. 어떤 곳에는 <어나더 레코드>의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 있기도 했다.


창작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어떤 곳에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녹록하다. 다른 한쪽에는 단지 오늘을 살아가는 매 순간에 깃든 행복을 찾아내는 평온한 시선이 있다. <어나더 레코드>의 경우 전적으로 후자에 가깝다. 여러 OTT들이 저마다의 오리지널 콘텐츠 공세로 시청자와 사용자를 붙잡고자 골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어떤 작품은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자극하지 않고 단지 거기 있으면서 눈길을 두는 이의 마음에 여유를 선물한다.


영화 '어나더 레코드' 포스터


https://seezn.sng.link/D4pff/w3qn


*본 리뷰는 영화 <어나더 레코드>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주관적인 평가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어나더 레코드'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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