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쁘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오스카 시즌이 되었다. 이번 달은 극장에 딱 한 번밖에 가지 못했는데 본 영화가 그나마 <더 배트맨>(2022)이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다른 한 영화는 리뷰를 쓰기 위한 시사회 참석 건이었지만 회사 일정으로 가지 못했다.
영화 '쓰리 빌보드'(2017)의 국내 개봉 당시에 만든 포토티켓들
⠀
4년 전 이 시기를 돌이키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더 포스트>부터 <플로리다 프로젝트>, <팬텀 스레드>, <쓰리 빌보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레이디 버드> 같은 영화들이 2월부터 4월까지 거의 쏟아지다시피 찾아왔다. 내 경우 <레디 플레이어 원>과 <원더스트럭>도 여기 포함하겠다. 이중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극장에서만 여덟 번, <쓰리 빌보드>는 네 번, <원더스트럭>은 세 번 봤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영화에 가장 깊이 파묻혀 있었던 시기를 고른다면 이때를 말할 수밖에 없다. (그 해 하반기에는 <스타 이즈 본>이 있었다)
망원동, '가가77페이지'
어제는 가가77페이지에서 있었던, 기다리던 모임 <디어 마이 뮤직>의 첫 시간에 참석했는데 저녁을 지나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떠올리다 보니 지하철에 발 디딜 자리가 없어 타지 못할 만큼의 시간이 되어 있었다. 떠올린 것들은 다 지금의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들이었다. 자주 인용하는 한 영화의 대사처럼, 굳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들이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느 날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이번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후보작 중에 본 건 다섯 작품이다. 나머지 후보작들까지 보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중 어떤 건 영영 볼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이번 주는 하루도 정시퇴근을 하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영화와 멀리 있는 평일을 보냈는데, 거의 <패터슨>의 패터슨처럼 지낸 월화수목금이었다.
⠀
퇴근한 지금은 보도자료 하나를 써야 하고 리뷰를 쓸 개봉 예정작 한 편을 마저 봐야 한다. 주말에는 마무리해야 할 원고가 두 개 있다. 잠깐 포토티켓 정리를 하다 이걸 꺼내고 나니, 그랬다고 적고 나니, 어제 모임에서 들은 음악들의 재생목록 한 바퀴를 훌쩍 돌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기를 계속해서 그러한 채로 행하는 일에는 그만큼의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고맙게도 아직은 알고 있는 것과 아끼는 것들의 범주를 넓히는 일이 그것을 길러주거나 지켜준다고 느낀다.(202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