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Apr 01. 2022

친애하는 낯선 음악들에게

앎과 경험의 범주를 넓히는 시간

가쁘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오스카 시즌이 되었다. 이번 달은 극장에 딱 한 번밖에 가지 못했는데 본 영화가 그나마 <더 배트맨>(2022)이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다른 한 영화는 리뷰를 쓰기 위한 시사회 참석 건이었지만 회사 일정으로 가지 못했다.


영화 '쓰리 빌보드'(2017)의 국내 개봉 당시에 만든 포토티켓들

4년 전 이 시기를 돌이키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더 포스트>부터 <플로리다 프로젝트>, <팬텀 스레드>, <쓰리 빌보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레이디 버드> 같은 영화들이 2월부터 4월까지 거의 쏟아지다시피 찾아왔다. 내 경우 <레디 플레이어 원>과 <원더스트럭>도 여기 포함하겠다. 이중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극장에서만 여덟 번, <쓰리 빌보드>는 네 번, <원더스트럭>은 세 번 봤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영화에 가장 깊이 파묻혀 있었던 시기를 고른다면 이때를 말할 수밖에 없다. (그 해 하반기에는 <스타 이즈 본>이 있었다)


망원동, '가가77페이지'

어제는 가가77페이지에서 있었던, 기다리던 모임 <디어 마이 뮤직>의 첫 시간에 참석했는데 저녁을 지나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떠올리다 보니 지하철에 발 디딜 자리가 없어 타지 못할 만큼의 시간이 되어 있었다. 떠올린 것들은 다 지금의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들이었다. 자주 인용하는 한 영화의 대사처럼, 굳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들이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느 날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후보작 중에 본 건 다섯 작품이다. 나머지 후보작들까지 보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중 어떤 건 영영 볼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이번 주는 하루도 정시퇴근을 하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영화와 멀리 있는 평일을 보냈는데, 거의 <패터슨>의 패터슨처럼 지낸 월화수목금이었다.


퇴근한 지금은 보도자료 하나를 써야 하고 리뷰를 쓸 개봉 예정작 한 편을 마저 봐야 한다. 주말에는 마무리해야 할 원고가 두 개 있다. 잠깐 포토티켓 정리를 하다 이걸 꺼내고 나니, 그랬다고 적고 나니, 어제 모임에서 들은 음악들의 재생목록 한 바퀴를 훌쩍 돌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기를 계속해서 그러한 채로 행하는 일에는 그만큼의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고맙게도 아직은 알고 있는 것과 아끼는 것들의 범주를 넓히는 일이 그것을 길러주거나 지켜준다고 느낀다. (2022.03.25.)


'가가77페이지'에서, <디어 마이 뮤직> 첫 시간
3월 24일 저녁, '가가77페이지'에서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에서 질서를 찾고자 분투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