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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25. 2023

함께 울어야만 달라지는 일이 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2022) 리뷰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이미 한 적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미 인용한 적 있는 것을 다시 가져오겠다. 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던
시계방에 걸린 수많은 시계들이 한꺼번에 울린다
우리가 한꺼번에 울면 해수면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신철규, ‘바벨’ 부분,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 2017)


이 시는 재난에 관한 또 다른 영화에 대한 글에서도 인용한 적이 있었다. 일부러 같은 대목을 재차 가져온 것은 이것이 얼마든지 반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박준은 아예 산문집의 제목을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이라 짓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지금 말할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2022)을 생각한다면 울음은 단지 곁에 있는 누군가를 함께 울게 하거나 다독임을 받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말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재난의 앞에서나 뒤에서나 계속해서 무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녀오겠습니다."


모두가 회복 탄력성이 높을 수는 없고 어떤 이들은 한편의 폐허를 내내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지속하고 미래로 어떻게든 나아갈 동력과 동기를 얻도록 누군가를 북돋는 일이다. 여느 일본 영화들에서도 “다녀오겠습니다”“다녀왔습니다” 같은 인사는 중요한 함의를 갖기도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조금 더 힘이 실린다.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불행과 비극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는 스즈메와 소타의 평화롭게까지 보이는 여정처럼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매일매일 있는 힘을 다해 순간에 인사하고 응답해야만 한다. 미래에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해주는 일이, 초월적인 세계의 문을 지나 지켜질 수 없었던 약속들을 향해 하나하나 응답해 주는 일이 그래서 누군가를 보듬는다. 그 응답은 과거를 되돌리거나 거창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서 와”, “수고했어”처럼 지극한 일상의 말들이다. 그래서 열쇠를 돌려 문을 잠그는 일이나 “돌려드리겠습니다” 같은 발화들은 매 순간 이야기가 청자에게 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위로의 방식이다. 여기에는 어떤 오래된, 동시에 간절한 진심이 있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2016)<날씨의 아이>(2019)를 지나 <스즈메의 문단속>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 문은 바로 '폐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문을 찾는 사람은 보통 문을 찾는 게 아니라 '폐허의 문'을 찾는 사람이다. 얼핏 무력해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도 다 알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것이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거운 마음은 땅을 진정시킨다. 어떤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 누군가를 기억하는 마음. 지나간 것을 돌이키는 마음과 어떤 순간을 계속해서 떠올리는 마음.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우리는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에는 무게가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지진을 일으키는 의지 없는 힘인 '미미즈'는 폐허에 난 문을 열고 쏟아져 나오려 한다. 아니, 폐허의 자리에 문은 생겨난다. (일본에서) 예로부터 수호신처럼 영물로 취급받아 온 고양이의 형상을 한 요석도, 미미즈의 힘을 영원히 억누를 수는 없다. 마치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아니,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자연이 하는 일이거나 자연의 의지와도 상관없는 재난을 막을 도리라는 건 없다. 우리는 불가항력의 상황까지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슈퍼파워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무탈하거나 평범하거나 안전한 일상을 원할 뿐인데 재난만큼 지역사회 혹은 국가 단위로 많은 사람의 일상을 파괴하는 건 전쟁 외에는 없을 것이다. 지진경보가 울린다고 지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다만 책상 밑에 웅크린다거나 건물 밖으로 피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도쿄의 오후를 뒤덮는 미미즈. 오프닝 타이틀이 뜨기 전 관객들이 이미 본 것처럼 미미즈는 스즈메와 쇼타만 볼 수 있다.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퇴근을 하고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는 평범한 일상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관객이 이미 규슈에서부터 '체험'해왔던 것이지만 작중 도쿄의 시민들은 그것을 알 리 없고 래드윔프스의 '東京上空(Sky Over Tokyo)'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는 바로 그 장면의 모든 것이 말해주듯 재난은 예고 없이 일상을 잠식한다. 상공을 뒤덮은 미미즈가 지상에 내려앉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딘가에 뒷문이 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걸음을 재촉하는 '토지시'(들) 뿐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소타와 스즈메가 거듭 "돌려드리옵나이다"라고 말할 때 그 돌려드림의 대상은 그곳에 남은 이야기들을 어쩌면 계속해서 발화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태평양 연안에서 도호쿠 지방에 몰아쳤던 쓰나미를 굳이 떠올리거나 공감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도 몇 번의 재난이 있었다. 거기에는 '왜'가 없고 오직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다녀올게", 또 누군가에게는 "좀 이따 봐" 같은 말들이 남았을 것이다. 응답하지 못한 수많은 인사들에 대하여 신카이 마코토는 대신 화답을 발화한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이 글의 서두에 잠시 언급한 시인 박준은 역시 앞에서 언급한 산문집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미미즈가 조금 달리 움직였더라면 어떤 이들이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놀이공원에 또 같이 가자고 했던 약속 등은 지켜질 수 있었을까. 이미 벌어진 일들 앞에서 가정은 아무런 힘이 없다. 다만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고통이 다시금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가해졌을 때,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거나 혹은 조금이나마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살아갈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 곳곳의 폐허에 요석 없이 방치된 문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토지시가 하는 일이 바로 무거운 마음들이 사라져 진정되지 않은 땅이 있지 않은지 대대로 살피고 열린 문을 닫는 일이다. <스즈메의 문단속> 속의 여러 장면들은 지극히 평화롭거나 단조롭거나 일상적이다. 우리가 삶을 지속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되풀이될 순간들.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불행히도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를 평일과 주말. 그런 순간을 예고하거나 지시하듯 스즈메가 여러 조력자를 만나고 여정을 함께하는 많은 대목은 마치 재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평화로운 로드무비처럼 여겨진다.


사실은 영화 속 어떤 시점에서 네 살 난 '스즈메' 또한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 "너는 앞으로도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고 널 사랑해 줄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갈 거야." 이에 앞서 이런 말도 있다. "지금은 아무리 슬퍼도, 스즈메는 앞으로 잘 클 거야."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순간의 눈물을 닦아줄 이가 바로 자신일 수 있기를, 계속해서 사랑과 응원과 위안과 용기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것이 거창한 바람일지라도 가닿기 위하여 다짐하는 결연한 각오. 나와 함께 당신의 일상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 거라고 믿기라도 하듯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에서도 미오(타케우치 유코)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다. "괜찮아. 우린 잘할 수 있어. 그렇게 정해져 있어." 네 살의 스즈메가 누군가에게 듣게 되는 말과 닮아 있다. 자신을 내던져 문을 닫고 열쇠를 꽂고자 하는 마음은 평범한 미래를 향해 있고 그것은 혜성 충돌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이나 기상 상황 자체가 아니라 바로 폐허라는 장소, 사람과 이야기와 기억이 깃든 공간을 향한 이야기로 탄생했다.


말과 글은 어쩌면 그 자체로는 별다른 힘이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서로를 기억하는 이가 있고 어떤 간절한 마음이 깃든다면 누군가의 일상은 참담한 재난을 지나고서도 능히 지켜질 수 있다. 상처와 희생을 감내한 문지기의 문단속이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모두의 것일 수 있다고, <스즈메의 문단속>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말이 "다녀왔습니다"가 아니라 "다녀오겠습니다"인 것지는 않을까.


"나 다녀올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국내 포스터

<스즈메의 문단속>(すずめの戸締まり, 2022), 신카이 마코토 감독

2023년 3월 8일 (국내) 개봉, 122분, 12세 이상 관람가.


(목소리) 출연: 하라 나노카(이와토 스즈메), 마츠무라 호쿠토(무나카타 쇼타), 후카츠 에리(이와토 타마키), 소메타니 쇼타(오카베 미노루), 이토 사이(니노미야 루미), 하나세 코토(아마베 치카), 하나자와 카(이와토 츠바메), 카미키 류노스(세리자와 토모야), 마츠모토 하쿠오(무나카타 히츠지로) 등.


수입: (주)미디어캐슬

공동제공: (주)로커스

배급: (주)쇼박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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