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래시’(2023) 리뷰
-브루스 웨인
쏟아지는 멀티버스 작품들이 주는 피로감 속에서 찾아온 <플래시>(2023)는 이제야 찾아온 강력하고 또렷한 빛과도 같다. 마치 DC 영화 세계관에서도 이런 영리하고도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플래시>는 캐릭터 활용에 대해서도 소재를 구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선보인다.
직접 비교하자면 <플래시>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같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관건은 단지 세계관 내 여러 인물들(예: 벤 애플렉의 배트맨,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 등)을 한 영화에 등장시키는 것이 소위 팬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플래시/배리 앨런(에즈라 밀러)의 우연한 발견 이후 ‘과거를 바꾸고 싶다’라는 강력한 동기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중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스파게티’를 통해 멀티버스에 대한 장황한 설명 없이도 직관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스피드포스’를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 및 만족도의 차이는 <맨 오브 스틸>(2013)부터 시작된 DC 확장 세계관 내 다른 작품과 캐릭터들에 대한 인지 내지는 이해의 정도에서 비롯할 것으로 보인다. ‘배트맨’이나 ‘수퍼맨’ 등에 비하면 적어도 영화에서 ‘플래시’를 잘 알려진 캐릭터라고 할 수 없는 데다 마블 혹은 엑스맨 세계관의 ‘퀵 실버‘와도 종종 비교되므로 단독영화로서 <플래시>는 진작 필요했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플래시>의 144분은 전반부터 후반까지 개별 작품으로서의 본분에 비교적 충실하다.
어쩌면 해묵은 테마일 수도 있겠으나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배트맨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은 배리 앨런이 플래시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려 하는 것에 대해 직접적인 조력자이자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의 관계와 유사하다) 우연히 하루 전 있었던 일로 다녀온 배리에게 브루스는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물론 과거의 상처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배리는 스피드포스를 계속 사용해 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고, 그 결과로 생겨난 우주의 균열은 <맨 오브 스틸> 속 조드 장군을 재림하게 만든다.
갖가지 유머와 액션들을 지나 플래시/베리(들)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후반부 일련의 일들은 그것이 꼭 수퍼히어로 혹은 메타휴먼만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대와 상황을 초월할 만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일부 캐릭터의 등장과 퇴장 방식에 있어 한계도 드러내지만 <플래시>는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지난 몇 해 동안 선보인 DC 영화들이 그 자체로 무쓸모한 결과물은 아니었음을 역설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확장판이자 외전 성격의 작품이었던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까지도 아우르는 모습을 극장에서 관람하면서, 이제는 DC 영화 세계관이 새롭게 변화를 맞이할 것을 알면서도 이들을 어느 또 다른 세계에서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What do we do?”라는 물음에 그저 “We try not to die.”라고 답할 수밖에는 없는 세계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이 다음 세계를 사라지지 않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더는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 만나는 줄도 모르는 채 마주하게 될 필연적 교차점을 향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 중에서.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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