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던 날들
'이직에 성공할 뻔'했다고 앞서 적었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그걸 다행스럽게 일어난 일이라고 여기기는 어려웠다.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될 질문.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기를 추구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든 돈을 버는 일 자체를 더 중요시 여길 것인가. 퇴사 후 몇 개월 동안은 그리 다급하지 않았다. 어디든 입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면접을 보러 갔던 몇 군데의 수입/배급사 등의 사무실 풍경을 보면서 막연히 '그곳이 이곳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면접에 임하거나 해왔던 업무들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고 애정도 있었으니까.
이때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지만 이후 깨달은 건 원활한 이직을 위해 직전 회사에서 얼마의 기간 동안 일했느냐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2년 혹은 3년가량 직전 회사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1년가량 혹은 그 미만의 직전 회사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비해 커리어에 있어서나 직무 역량에 있어서나 회사 혹은 사용자 입장에서 더 신뢰가 갈 것이다.
약간의 퇴직금과 약간의 대출금, 그 외 비정기적/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영화 관련 모임 진행비나 원고료 등으로는 당장은 생활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가능성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물론 돈을 벌 방법을 찾는 일이다. 구직 활동과 함께 영화와 관련된 기타 모임 등의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그렇게 할 방법을 찾은 건 '단기 알바'였다. 목록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당일 현장에 참석해 몇 시간을 '자리 차지' 하면 되는 일일 알바를 구했다. 예를 들면 한 통신사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걸고 '5G 개통식'을 했는데 현장 참석을 구인하는 공고를 보았다. 약 3시간 정도 현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거나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출근 연락을 받았다. 전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이상혁(페이커) 등을 현장에서 보았고, 테크/IT 관련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및 인플루언서 등도 눈에 띄었다.
- 주말에 진행되는 현금 호송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전국 각지의 은행, 편의점, ATM 등에 현금 수송을 담당하는 업체들이 있는데, 거기에 임시적으로 자리가 필요하거나 하여 일용직으로 가서 일하는 것이었다. 메신저, 드라이브, 가드로 구성된 한 팀이 차를 타고 각 위치별로 이동해서 그곳에 필요한 만큼의 오만 원권/만 원권을 채워 넣는 역할을 한다. 대개 단기 구인의 대상이 되는 '가드'는 (따라다니면서 말 그대로 '가드'의 역할을 한다) 평이한 업무였지만 내가 일했던 곳에서 담당하는 지역 중에는 마사회 지사도 있었다. 수천만 원의 '돈다발'이 오가는 걸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자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고 대기시간에는 할 게 없어서 전자책을 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 독서 모임 등을 계기로 자주 방문하게 된 한 동네서점에서 몇 주 간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오래 일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환경이었고, 만약 더 오래 일했다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지에 대해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위와 같은 일들은 2018년 상반기부터 대략 2019년 가을 무렵까지 계속됐다. 마치 다양한 종류의 단기 알바를 가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했던 것처럼 보일까 부연하자면, 이것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비유적으로 적자면 어쩌다 생각나면 한 번씩 '알바몬' 등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는 정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시간은 가고 잔고는 줄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아주 잃지는 않는, 막연한 낙관과도 같은 것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무렵 본 영화 - <위대한 개츠비>(2013.05.16 국내 개봉)
(...) 그가 손을 뻗어 그토록 그리던 녹색 불빛은 본래 안개가 자욱해 빛 너머의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마침내 5년의 시간을 뚫고 닿는 순간, 평생을 걸고 찾아왔던 그 빛은 온 인생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그저 거기 덧없이 있어 발하지 못하는 빛이 되고 말았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이상은 품어온 시간만큼의 환상이 되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모든 것을 넘어서는 비현실성이 된다. 높이 쌓아올린 이상의 무게가 현실이라는 기반보다도 무거웠다. <위대한 개츠비>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기 어려운 것을 바탕으로도 하나의 (허물어지기 쉬울 지라도) 거대한 세상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세계가 누구를 위한 것이든, 어디로 향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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