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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6. 2024

트레바리 에세이 쓰기 모임에 다녀왔다

누가 내 글을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겠어요

타인이 내 글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수확이자 기쁨은 생각지 못했던 범주나 방향으로 앞으로 쓰일 글을 가늠해 보게 되는 일이다. 이번 [씀에세이-노트]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도 그랬다. 나는 "글을 쓸 때면 구 세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라는 제목으로 그간 여러 차례 써왔던 영화기자/평론가의 한줄평과 별점을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생각을 썼다. 모임 구성원을 대부분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쪽을 생각하다 보니 에세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를 했다.


https://brunch.co.kr/@cosmos-j/1572


누군가 "더 강하게, 더 사이다 같은 비판을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건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많은 것들에 대해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거나 그러려고 하는 편이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그럴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글에도 "자신이 대단한 소비자이자 독자인 것처럼 저널리즘 종사자들의 노력을 재단하고 폄하하는 이들에게는 말과 글에 권리 이전에 책임이 따른다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결여된 인식을 토대로 한 리액션을 나는 별로 존중할 생각이 없다."라고 썼다. 그렇지만 너무 확신에 찬 글을 정답인 것처럼 쓰는 일은 조심스럽다. 특히 영화 감상에 대해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를 보면 자기 것에 대해서만 '취존'을 부르짖으면서 타인의 것에 대해서는 전혀 존중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이 맞다는 확신에 찬 행태가 넘쳐나기 때문에, 내 글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비평에 대한 몰이해를 기반으로 타인의 생각을 재단하고 폄하하는 일은 분명 옳지 않다고 생각하므로, 이것은 앞으로도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존중할 생각이 없는 생각에 대해 어디까지 존중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대목은 제목("글을 쓸 때면 구 세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이 글을 온전히 대변해 주는 훌륭한 제목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동의했다. 요컨대 특정한 사고방식과 그 표현의 총체로서 길든 짧든 글의 탄생 과정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 세대와 신 세대로 단순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섣부른 세대론보다는 '콘텐츠 소비' 양식의 변화나 언어 사용의 변화에 대해 짚으면서 마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스스로를 향한 자조를 기반으로 그럼에도 축약되고 계량될 수 없는 가치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는 각오로 글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에 대해 진심으로 이야기하기로 시간을 열정적으로 할애한 이들이 함께인 공간에 향하는' 일을 마치 영화를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 일상의 공간이 아닌 극장으로 향하는 일과 닮아 있다고 표현해도 괜찮을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평일 저녁의 이 시간이 당분간 기다려질 것 같다. 첫 모임에서는 각자의 에세이와 더불어 캐시 박 홍의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를 함께 읽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하는 기분 좋은 호기심 속에 다음 책을 펼친다. (2024.05.09.)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에서(2024.05.09)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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