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계'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고칠 수 있는데, 그건 이야기를 고유하고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채택하여 쓰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직전에 썼던 것보다 조금 더 나은 버전의 이야기가 탄생해 간다. 그러니까 그건 "사실의 세계에 저마다 다는 주석, 혹은 자막 같은 것"으로서 "자신만의 진실"(『음악소설집』에서, 프란츠, 2024, 226쪽)이다. '리얼리즘'에 대해 약간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야기 속 창조된 세계는 그 자체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거나 실어 나를 수 없고, 그저 자신의 이해나 가치관이 투영된 세계를 최선을 다해 쓰는 것이다. 옆사람이 뺨을 때렸을 때 그 사람의 이유는 결코 알 수 없고 다만 '아 이래서 때렸겠구나' 하고 내 이야기를 통해 고쳐 쓴 해석이 뛰다를 뿐이라는 것.
*그는 『데미안』을 처음 읽었던 유년을 떠올리며 성북동에서 시를 쓰던 그때 '정말 다락방에서 시를 쓰는 미래가 왔네'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일곱 해의 마지막』, 문학동네, 2020, 245쪽)이 곧 꿈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날 지나쳤던 경험이 곧 평범한 미래가 되어 있기도 한다. 제법 알려져 있듯 원래는 소설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하지만 가볍게 꺼내는 생각이나 농담 같은 것들에도 그는 여지없이 '소설가'다.
논현문화마루도서관에서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단편소설을 그의 낭독으로 듣는 일은 특별했다. "방금 인생이 내게도 맥주 한 잔을 내밀었어요. 우리 낮술 마시러 가요. 내가 할 이야기가 생겼어요." 뭘 하는 것만 자기 선택이 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선택이 된다. "7번국도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7번국도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일"이다. 이 순간도 결국은 꿈이 될까, 혹은 꿈으로 남을까?
*사인을 받으면서 2년 전 (마음산책) 강연에서 들려주셨던, 추자도의 중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왔던 이야기가 그로부터 몇 달 뒤 출간된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수록 단편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재경험된 경험이 정말 각별했다고 말씀드렸다. 작가님은 "또 뵈어요"라고 하셨고 나도 "또 뵈어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