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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09. 2024

좋은 사람이라 말해줄 사람들이 많이 있어

트레바리 [씀에세이-노트] 한 시즌을 마치며

2008년 여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게임 아이템 '현질'을 위해서였다. 네오플/넥슨의 PC RPG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에 미쳐 있었던 시기다. 원 없이 게임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고민도 걱정도 없었다. 부모님에게 받던 생활비가 게임 비용 같은 것을 상정할 리 없었으므로 내게는 그걸 마련할 수단이 필요했다. 시급 3,800원을 받고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밤을 일해 받는 월급은 지금 생각하면 그리 큰돈이 아니었지만 게임 재화를 어느 정도 구입하기는 충분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던파'에 빠져 있던 7년간은 일종의 게임 내 커뮤니티인 '길드' 사람들과 교류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외장하드디스크에서 찾은 던파 스크린샷 일부


내향적이고 붙임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어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친해지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다. 지금보다 그때는 더더욱 그랬다. 누군가와 대화의 물꼬가 트이려면 공통된 주제나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 그때 게임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 길드 사람들의 오프라인 모임인 '정모'에서도 특별히 하는 건 없었다. 닉네임 불러 가며 같이 저녁부터 PC방에서 게임하고 삼겹살 구워 식사를 하고 노래방에 가거나 다시 PC방에 가거나 하는 식이었다. 주안역까지 가서 밤새 놀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돌아왔다. 모임에서 주목받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편의점 월급으로 게임 캐릭터의 '스펙'을 제법 올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각종 '퀘스트' 등을 대신 해결해 주거나 (일명 '쩔'이라 부르는) 특정 '던전'의 사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등 길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위치가 됐다. 그러다 길드 부 마스터가 됐다.


대학 졸업과 취직이라는 사회의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걸로 거의 벌어먹고 사는, 20년 차 던파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어떠한 고민도 걱정도 없기는 힘든 대학생활 후반을 본격적으로 맞이하면서 게임과도 결국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계산하지 않았지만 각종 캐시 아이템 구입에 쓴 것까지 포함하면 치아 임플란트 두 개 정도 심을 돈은 썼을 텐데, 아이템을 처분하는 등 계정을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떨어진 건 불과 40만 원 남짓이었다. 편의점에서 자정마다 보던 긴 정산표 속 숫자들보다 내게는 그 40만 원이 더 현실감을 일깨우는 숫자였다. 그럼에도 길드 사람들과 지금도 카카오톡 채팅방은 드문드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결국 내게 남은 건 앞뒤 생각 없이 게임에 미쳐 있던 시기의 무형의 추억 자체인 듯하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건 그때의 경험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내게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영화 기록의 창구를 네이버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스토리로 옮겨오면서 나처럼 영화 관련 관심사를 기록하는 또 다른 사람들과도 해시태그 등을 통해 이어져 교류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그 분야는 책으로도 이어졌다. 독립서점에 가고 책이나 영화 관련한 모임이나 강의 등을 하게 된 계기도 대부분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 교류 덕분이었다. 모두와 처음과 같은 양상의 관계로 계속해서 왕래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소셜미디어와 같은 온라인에서 낯선 사람과 무언가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일에 크게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던파 밖에 모르던 때보다 조금 더 사회화가 된 것도 영화와 책을 중심으로 여러 자리에서 제법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단지 게임에서 영화 등으로 관심사가 옮겨갔을 뿐이다.


미성년을 지나 성년이 된 뒤 다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일이 늘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년을 자라게 한 동네, 기본 교육과정을 거쳐온 학교, 날 때부터 같이 살았던 가족이 아니라 온통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우리는 저마다 익숙했던 울타리를 얼마간 벗어던지고 겪어보지 않았던 방식과 범주의 대화에 부딪힌다. 편안함과 허물없음 대신 예의와 배려를 위한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인식하고 나면 우리는 선입견이나 판단을 잠시 유보한 채 대화의 내용 자체와 그 발화들이 오가는 '사이'에 더 몰입하게 된다. 혼자서 알고 믿어왔던 세계의 바깥에 더 많고 넓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비로소 경험하게 된다.


책이나 영화를 매개로 진행되는 모임 등의 자리를 마칠 때면 그런 생각을 종종 해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의 '셀린'과 '제시'의 경우처럼 말해볼까. "여기서는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살던 곳을 잠시 떠나온 여행지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대화와 순간의 분위기에 더 빠져들게 된다. 그 세계는 서로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비일상의 시공간이므로, 이야기에 더 잘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이다. 하룻밤이라는 시간적 제약도 대화를 무르익게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There’s nothing like going to a big dark theatre with people you’ve never met before and having the experience wash over you."** 크고 어두운 상영관에서,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영화가 주는 경험이 당신을 씻어 내리도록 허락하는 일. 어릴 때는 마냥 집 밖이 위험하기만 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게임을 했다. 그나마 학교는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닿을 곳에 있었고 게임은 밖에 나가지 않고도 경험할 수 있는 오락거리였다. 다시 말해 안전한 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일상. 지금은 비일상의 시공간에서 비로소 경험될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게 됐다. <어떤 사람들인지 알 길 없는 불특정 다수의 낯선 이들과 '함께' 관람하는 극장에서의 영화>에 빗대어 <책이나 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집 바깥에서 나누는 비일상의 경험>을 생각하게 됐다는 뜻이다.



[트레바리에서 쓴 글]

-글을 쓸 때면 구 세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https://brunch.co.kr/@cosmos-j/1572

-다음 문장을 읽고 따라하시오 https://brunch.co.kr/@cosmos-j/1598

-지금 양치를 잘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https://brunch.co.kr/@cosmos-j/1604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에서


그간 경험해 왔던 갖가지 모임들보다 [씀에세이-노트]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 즐거운 영감과 배움으로 가득했다고 기록해두고 싶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글쓰기와 책 읽기에 진심으로 열심인 사람들이 순수하게 전해주는 그 무해한 대화 속에는 더 나은 글, 더 좋은 책, 그리고 더 선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일에 대한 지적이고 따뜻한 화두가 가득했다. 4개월은 제법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네 번의 세 시간은 찰나였다. 에세이 마감일은 매번 빨리 찾아왔다. 그렇지만 글에 대해 오고 간 댓글들은 물론 현장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무엇에 비할 바 없이 소중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과 공부를 거듭하는 중이지만 '바로 이 사람들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거기에 어느새 더해졌다.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에서


첫 모임 때 자기소개를 위한 '랜덤 질문'에 답하다가 덜컥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2024) 속 삼체인 이야기를 했다. 다른 인물로 살아볼 수 있다면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질문이었던가. 즉각 떠오르는 인물이 없어 겨우 짜낸 답변에 가까웠지만 그날 집에 와서 스스로의 그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순간 큐카드를 미리 가지고 있을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영화 <컨택트>(2016) 속 언어학자 '루이스'의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그는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를 현재처럼 기억하게 되면서 중요한 순간 기꺼이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간혹 어떤 모임은 '괜히 했어' 싶을 만큼 별로인 경우가 있는데, 이곳에는 몇 번이고 더 함께이길 택할 것이다. 서로의 글을 어느 누가 이렇게 열심히 읽겠는지. 만약 내가 '루이스'였다면 몇 번의 [씀에세이-노트] 앞에서 정확히 위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루이스' 같은 사람이 아니고 오직 지금 밖에는 경험할 수 없으므로 조금 앞서 이야기한 '셀린'처럼 다시 말해야겠다. "여기서는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한 문장이 더해진다. "여기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아마도 사회초년생 무렵에는, 혹은 그보다 몇 년 앞서 주말 새벽을 편의점에서 보내던 나날이라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다. 더 좋은 글, 더 많은 책, 그리고 지금과 같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경험을 조금 더 쌓고 싶다고 여기며 다음 [씀에세이-노트]를 만나러 간다. (2024.08.08.)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에서


*해당 대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I love this because no one knows I'm here and I don't know anyone that knows you that would tell me all the bad things you've done."

**2019년 2월 16일, 55th Annual CAS Awards에서 그는 OTT 작품과 같이 집에서 감상하는 영화와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는 같은 층위의 경험을 줄 수 없다며 위와 같이 발언했다. 그 다음 문장에서 일부 부연했으나, 본 의미를 실어나르고 싶어 원문을 적었다.


트레바리 [씀에세이-노트] 2024.05~08 시즌을 마친 뒤

https://m.trevari.co.kr/product/cc8c9ffd-0e8e-45c6-9891-1edc422b85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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