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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31. 2024

가상현실을 넘어선 가상현실, ONI

소설 ‘레디 플레이어 투’(2024) 리뷰

2020년 말 미국에서 출간된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투』가 국내에 최근 번역 출간됐다. 1편의 이스터에그 헌트 이후 오아시스의 미래는 물론 웨이드와 주인공들의 오아시스와 현실세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더욱 치열해진 고민들로 가득하다. 현실-가상현실의 토대에 어니스트 클라인의 상상 한 겹이 더해졌다. 이것이 1편처럼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상화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어니스트 클라인 소설 '레디 플레이어 투'


https://brunch.co.kr/@cosmos-j/286



1. <레디 플레이어 원> 이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포개어 생각하기)


1편에서 웨이드와 ‘하이파이브’ 일행들 그리고 건터들은 오아시스를 수중에 넣으려는 IOI와 놀런 소렌토에 맞서 ‘덕질’의 힘으로 오아시스를 지켜냈다. 1편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동력은 세계의 창조자인 제임스 할리데이가 생전에 탐닉했던 1970~1980년대를 위주로 한 미국의 방대한 영화, 드라마, 게임, 음악 등 대중문화(팝컬처) 그 자체였다. 더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들을 암기하거나 정보로 취급하는 건 이스터에그를 찾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주인공 웨이드 와츠와 같은 순수한 건터들은 진정으로 그 작품들을 좋아하고 명대사나 코스튬 등을 따라 하며 호기심과 모험심에 기반해 오아시스 내 수많은 행성들을 누비고 다녔다. 반면 IOI의 식서들은 단지 IOI가 투입한 용병에 지나지 않았기에 진정으로 오아시스 세계를 모험하는 이들이 아니었고 할리데이가 남긴 이스터에그를 끝까지 찾아낼 수는 없었다.


어니스트 클라인 소설 '레디 플레이어 투'


2. <레디 플레이어 투>가 하는 일


1편에서 오아시스의 새 주인이 된 하이파이브 일행들은 일주일에 일정 시간 이상은 오아시스 접속 대신 현실 세계의 삶에 충실하도록 정책을 바꾸는 등의 변화를 꾀했다. 이미 에너지 위기 등으로 황폐화된 지구에서 수많은 인류가 오아시스에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그 변화는 제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1편 <레디 플레이어 원>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세이렌의 영혼을 나눈 일곱 개의 조각을 찾아라

세이렌이 활약했던 일곱 개의 세상에서

조각마다 내 상속자는 대가를 지불하리

다시 한번 온전한 세이렌으로 만들기 위해’(30쪽)


<레디 플레이어 투>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1편에서 끝났다면 단지 주인공이 승리를 쟁취하는 서사가 될 수 있었겠지만, 이제 오아시스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지가 <레디 플레이어 투>의 핵심이 된다. 여기에 생전의 할리데이가 남긴 또 다른 미션이 웨이드에 의해 발견되고, 그 과정에서 전편보다 한층 진화된 오아시스 접속 장비와 기술력이 등장한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인공지능의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웨이드는 물론 에이치, 아르테미스, 쇼토 또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정확히 할리데이가 예상한 대로 이 신기술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인류 문명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매일 내려받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넘치고 넘쳤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며,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오엔아이 헤드셋을 통해 접속하는 오아시스는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중독성 높은 오락 활동이었다. 그 중독성은 기존 오아시스보다도 훨씬 더 높았으니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 GSS는 오엔아이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오엔아이넷(ONI-net)’을 출시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유저들은 전 세계 수십 억 명이 저장한 경험을 검색하고 구매하고 내려받고 평가하고 후기를 남길 수 있었다. 또 자기 경험을 올려 다른 유저들에게 팔 수도 있었다.“

-어니스트 클라인, 『레디 플레이어 투』, 에이콘출판, 전정순 옮김, 2024, 32쪽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 스틸컷


3. <레디 플레이어 원>과 <레디 플레이어 투>


1편으로 큰 성공을 거둔 원작자 어니스트 클라인이 직접 집필한 속편은 그 존재만으로 세계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태생적으로 속편은 전편과의 비교를 당하는 숙명을 타고난다. 그런 점에서 1편에서 어니스트 클라인이 각종 대중문화 레퍼런스를 방대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은 신선하고도 기발했던 반면, <레디 플레이어 투>에서 그 이상의 레퍼런스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일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톨킨이 자주 등장하고 그 서술 방식 또한 1편의 것을 답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점은 이제 웨이드 와츠는 트레일러 빈민촌에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이 아니라 오아시스 그리고 오아시스를 운영하는 GSS의 상속자라는 점이다. 에이치, 아르테미스, 쇼토와 할리데이의 상속 지분을 공평하게 나누었고 할리데이의 친구인 오그던 모로를 고문으로 위촉했으나, 이제 웨이드는 1편과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다. GSS의 회장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1편과 다른 캐릭터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전편의 주인공 캐릭터에 익숙했던 독자라면 어쩌면 이 점은 당혹감을 줄 수도 있다.


4. 오아시스 신경 인터페이스(ONI)


“오엔아이넷이 출시된 초창기에 GSS 직원 중 일부는 오엔아이넷이 인기를 끌면 나머지 오아시스 구역들이 유령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모든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돌아다니며 직접 경험하는 대신 저장된 경험을 재생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여전히 오엔아이넷과 함께 번창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총 사용 시간의 절반은 오아시스에서, 나머지 절반은 오엔아이넷에서 보냈다. 아마도 수동적인 오락과 양방향 오락 두 가지를 모두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듯했다.”(71쪽)


무엇보다 <레디 플레이어 투>의 핵심 토대는 전편이 보여준 가상현실 오아시스에서 한 차원 진화한 OASIS Neural Interface의 등장이다. 오아시스의 개발자 할리데이는 ONI로 통칭되는 이 기술을 이미 개발해 놓은 뒤, 자신의 상속자에게 그 시제품을 찾아내도록 한 다음 그것을 상용화할 것인지를 직접 결정하게끔 설정해 두었다. 단순히 손의 촉감을 느끼는 햅틱 정도가 아니라, 이 뉴럴 인터페이스는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 미러]의 기억을 영상으로 저장하는 한 에피소드처럼 경험 자체를 뒤바꾼다. 또 하나의 새롭고 거대한 소셜미디어를 탄생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살았던 삶의 일부분을 다시 살아볼”(13쪽) 수 있게 해 주고 다층적인 면에서 논의될 만한 화두를 제공한다. 소설 밖 우리의 삶에서는 가상현실이 일상화되지는 않았지만, <레디 플레이어 투>는 ‘우리의 삶이 실제로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지적 자극을 내내 제공한다.



https://m.yes24.com/Goods/Detail/124856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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