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평일 저녁에 보기를 정말로 잘한 영화. 빔 벤더스의 신작 <퍼펙트 데이즈>(2023)는 당연하게도 짐 자무시의 <패터슨>(2016)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인데, 짐 자무시 영화가 행과 연이 거의 일정하게 짜인 시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면 빔 벤더스 영화는 좀 더 여유와 변주가 많은 산문시에 가깝다고 해볼 수 있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Next time is next time. Now is now.")
<퍼펙트 데이즈>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의 전사(前史)도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구축이나 서사적 갈등도 아니다. 오직 야쿠쇼 코지의 얼굴에서 매 순간 나오는 어떤 리액션이다. 과묵하고 필요한 말만 하는 그가 마치 억눌러 왔던 것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어떤 장면이 마치 영화 말미에 자막으로 제시되는 일어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햇살)를 연상케 한다. 오직 '지금'이어야만 가능한 표현을 관록의 배우의 표정과 발화에서 생생하게 뿜어낸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다른 세상들로 이루어져 있어. 어떤 것들은 연결되어 있지만 또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지." ("The world is made up of many worlds; some are connected, and some are not.")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야쿠쇼 쿄지가 연기한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에서 공공 화장실 청소 업무를 한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꺼리거나 직업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히라야마의 일과는 아침 일찍부터 규칙적으로 짜여 있고 그는 청소 도구를 직접 개발할 만큼의 직업 정신을 보유한 인물이다.
영화 초중반을 지나는 (언뜻 봐도 직업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히라야마의 동료가 "어차피 더러워질 것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라고 하지만 실은 거기에 직업을 넘어 인생의 어떤 비밀이 숨어 있다. 히라야마는 그냥 웃어넘기지만 실은 거기에 이렇게 응답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것, 뭐 하러 살아? 결국 그 동료 다카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무단으로 그만둔다.
<퍼펙트 데이즈>는 평범한 과정과 흔한 반복을 예찬하는 걸작이다.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 규칙적인 일과를 보내면서도 히라야마는 공공화장실 인근 공원에서 필름카메라로 하늘과 나무 사진을 찍고, 윌리엄 포크너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읽고 니나 시몬과 루 리드와 더 스미스 음악을 듣는다. 일과를 마치고는 목욕탕에 가고 전철과 인접한 단골 술집에 가고 헌책방에 간다. 평일이 있다면 주말이 있고, 그림자가 있다면 거기 햇살이 있으며 출근이 있으면 퇴근이 있는 법. 엔딩 무렵 어떤 장면에서는 니나 시몬(Nina Simone)의 'Feeling Good'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히라야마가 울거나 웃는다.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지나면서도 그는 감각하고 생활하고 관찰하며 사색한다. 완벽한 나날은 대단한 직업, 대단한 사건에서 비롯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