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Aug 01. 2024

‘엑스맨’ 팬들이 여지없이 좋아하게 될 오락 서비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2024) 리뷰 혹은 생각 기록

0. 총평


<데드풀과 울버린>(2024)'데드풀'이 그랬듯 제4의 벽을 깨면서 배우와 배역의 경계를 허물고 '울버린'이 그랬듯 퉁명스럽고 무심하게 어떤 것을 지켜내는 여정을 묘사하는 영화다. 제법 오래 지속된 MCU 자체에 대한 피로감을 서사의 발판으로 삼는 방법은 그걸 자인하는 일이고, 라이언 레이놀즈와 숀 레비 등이 협업한 각본은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 21세기 폭스의 피인수로 단순히 미디어 제작 환경만 달라진 게 아니라 과거 마블코믹스가 여러 곳에 팔았던 캐릭터 영화화 판권으로 인해 분산된 이야기 조각들을 봉합하거나 떠나보내는 과정들이 <데드풀과 울버린>의 바탕이 된다. 최근 몇 년에 걸쳐 누적된 피로감과 난관을 단번에 해소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우리는 다음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관람하는 시간선이 다양화되고 같은 상영시간 안에서도 우리가 경험하는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결국은 '수퍼히어로' 장르의 원류는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진 한 장에 담긴 소박한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일지라도, 혹은 원치 않는 '능력'을 갖게 된 이가 간신히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분투기일지라도. <데드풀과 울버린>은 기획을 성립시키기 위해 멀티버스 사가의 설정을 끌어오면서도 한동안 잊혔던 20세기 폭스 영화들에도 잠시나마 생명력을 부여한다. 스스로를 한껏 낮추면서도 지나간 것들에 애정을 두는 이 방식이 끝내 마음에 들었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1. <엑스맨> 시리즈의 팬들을 위하여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2000)은 코믹스 기반의 수퍼히어로 영화 장르의 가능성, 즉 작품성과 오락성 모두를 잡으면서 인간과 뮤턴트를 소재로 동시대적인 화두를 충분히 담아낸 명작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엑스맨> 시리즈를 만들었던 폭스 사의 모 기업이 바뀌면서 코믹스 입장에서는 그간 각 영화사로 흩어졌던 판권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한 식구’로 각 캐릭터들을 규합할 수 있는 기회였겠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제 폭스 산하 엑스맨 들을 디즈니 산하에서 만나보기 어렵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났다. 어떤 의미에서든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2. 멀티버스 사가가 주는 피로감에 대한 자조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절정이었다. 무르익은 스토리텔링의 총결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얼마 뒤 재개봉 등을 진행한 <아바타>(2009)에 다시 자리를 내주었으나)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랭킹 기록을 다시 쓴 측면에서도 그렇다. 절정이었다는 말은 곧 그 이후가 문제였다는 뜻이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정도를 제외하면 MCU의 ‘페이즈 4’와 ‘페이즈 5’에 속한 다수 작품들은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이전의 영광을 전혀 잇지 못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2023)가 그나마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건 전적으로 ‘가오갤’ 캐릭터들이 ‘인피니티 사가’를 함께해 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면을 모르지 않는다는 듯 <데드풀과 울버린>은 ‘데드풀’의 캐릭터 특성을 활용해 영화 제작 환경 등에 대한 자조 섞인 농담을 이어간다. 어쩌면 더 나은 이야기를 향한 출발점은 과오나 실책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는 듯이.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3. 최선의 각본이었을지 모르지만 최상이라 하기는 어려운


앞에서 이야기한 ‘페이즈 4’와 ‘페이즈 5’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건 그 이전 페이즈 작품들이 너무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것과 비교되는 탓도 있지만 디즈니의 자체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디즈니+) 론칭과 맞물려 세계관의 크기를 너무 확장한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극장 개봉 영화와 OTT 공개 드라마(시리즈)를 오가며 이전 주역들의 공백을 대신하려 애쓰듯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단기간에 투입했지만 COVID-19 확산 시기에 따른 제작 환경의 변화 탓인지 일부 시리즈를 제외하면 결과물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마블‘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열광하던, 어떤 작품이든 개봉만 하면 대부분 성공하던 시기를 지나면서 팬들의 기대치가 높아졌고 그와 동시에 세계에 처음 입문하기 위한 초심자 입장에서의 심리적 장벽도 높아졌다. <아이언맨>(2008)부터 시작해 영화 또는 드라마화된 마블코믹스 기반의 작품들 전부를 ’숙지‘하지 않으면 신작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의무감이 아이러니하게도 페이즈가 거듭될수록 높아만 지는 것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 상황에서 ‘로건/울버린‘ 등과 같은 <엑스맨> 시리즈 캐릭터들을 활용해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의 장벽을 만든다. 십수 년 전 폭스 영화에 등장했던 어떤 캐릭터를 지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이미 ’디즈니-마블‘과 ’폭스-엑스맨‘의 오랜 팬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충실히 선행 학습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까. 다수의 카메오 출연은 팬 서비스 차원에 충실한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마블은 그래도 마블이구나‘ 싶은 감상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예를 들어 ’앞으로 더 ‘학습’할 작품과 캐릭터가 늘어나겠구나‘ 여겨지는 것이다. 애초 제임스 맨골드의 <로건>(2017) 이후 ‘로건’을 재등장시키는 기획 자체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4. 다른 생각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전적으로 내 기준임을 전제하면서.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기본적인 설정과 등장인물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관람에 도움이 된다. 요리를 먹기 전 그것에 들어가는 재료나 조리법 등에 대해 (당연히 ‘공부’까지 갈 필요는 없다) 조금 알고 먹으면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비단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에 국한되지 않으며 코믹스 원작 영화에 한하지도 않는다. 역사 소재의 작품을 볼 때 마땅히 실존 인물에 대한 정보는 관람에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 역시 엄밀한 의미의 학술 공부가 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게 ‘위키피디아’ 내지 ‘나무위키’ 혹은 특정 유튜브 채널의 관련 유사 영화 또는 시리즈 전작의 줄거리 요약 정도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코믹스 원작의 수퍼히어로 영화 특히 MCU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일어나는 일종의 스포일러 경보 현상이 내게는 종종 의아한 측면이 있다. 특정 장르, 특정 세계관에 대해서만 ‘사전에 접하고 싶지 않은’ 정보의 기준을 극도로 강화한다는 인상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흔한 표현이지만 <데드풀과 울버린>은 과거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헌사를 바치면서도 이제는 이 세계 또한 ’디즈니-마블‘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데드풀> 시리즈 3편이다. 캐릭터를 진정 아끼는 이들(주연-제작자-감독-각본 등)이 모여 만들어 낸 이 결과물은 작성일 기준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5억 4,500만 달러를 이미 넘어서는 극장 수익을 거두며 국내외에서 <데드풀 2>(2018)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마블이 (팬들의 기대감과 신뢰 등을 회복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 멀리 남아 있다는 중론이지만, 모처럼 만나는 이 화제작이 극장 상영관 문을 나서면서도 반가웠다. (7/10점.)


https://disneyplus.bn5x.net/4P93Y1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국내 포스터

https://brunch.co.kr/@cosmos-j/190

https://brunch.co.kr/@cosmos-j/625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인스타그램: instagram.com/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배우 야쿠쇼 코지의 15년 만의 내한 행사에 다녀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