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3)에는 '코모레비(こもれび)'라는 단어가 나온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뜻하는 말이다. 중요한 건 여기에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햇살이라는 뜻이 숨어 있는 점이다.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관리 업체 '더 도쿄 토일렛'의 직원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정해진 일과를 보내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거기 인생의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히라야마'는 무슨 요일이든 어떤 날씨에든 집을 나서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만히 미소 짓는다. 지금과 같은 무더위 속에서라면 바깥 날씨에 미소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어떤 순간이든 기꺼이 맞이하겠다는 듯이 마치 하루의 의식처럼 그것을 행한다. 자판기에서 커피 캔 하나를 뽑아 들고 운전하는 출근길에도 그는 올드팝을 들으며 삭막한 대도시 속 한 줄기 햇살을 관찰한다.
십 수 군데의 화장실을 정해진 동선에 따라 운전해 가면서 청소하는 그의 하루는 체계적으로 짜여 있다. 간혹 화장실 안에 누군가 있어서 청소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기므로 거의 혼자 하는 일이지만 그리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런 그에게 찾아오는 휴식의 순간은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 하나씩을 들고 맞이하는 점심시간이다. 그의 손에는 식사 하나만 들려 있지 않고 다른 한 손에 구형 필름카메라도 함께 있다. 카메라를 들고도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나뭇잎이 가만히 흔들리는 모양을 관찰하는, 그러면서 감에 의존해 셔터를 누르는 그의 시선과 손짓에 눈길이 간다.
예사롭지 않은 관찰력을 가진 인물임을 내비치듯 또 다른 장면에서 그는 공원 한쪽의 오래된 나무의 뿌리 부근에 새로 돋아난 싹을 발견하고는 집에서 가져온 작은 화분에 옮겨 담는다. 이제 그 식물은 매일 아침 '히라야마'의 출근 전 물 주는 화분들의 목록에 포함될 예정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에도 정해진 청소 일과를 보낸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들렀다 동네 단골 술집에서 하이볼 등 가벼운 술 한 잔을 마신 뒤 집에 돌아와 문고판 영미 소설을 읽는다.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 제목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퍼펙트'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듯 별 다를 바 없는 평소처럼의 하루를 보내는 그의 모습이 영화 속 어느 등장인물보다도 더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하는 일이 화장실 청소라는 점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건 매일 반복되는, 고생한 보람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동료 직원은 '히라야마'에게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무얼 하러 그렇게 열심히 청소해요?"라고 되묻기도 한다.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 「수면 위로」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 앞으로 간다. 그리고 나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서서 그 나무를 바라본다. 핵심은 바람을 보는 것이지만, 그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나뭇잎과 가지의 흔들림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도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고 어딘가는 반드시 흔들리게 돼 있다."(『음악소설집』, 프란츠, 2024, 54쪽) '히라야마'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나무를 관찰하는 모습은 바로 위 김연수 소설 속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거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안다. 바람이 나무 곁에서 불고 있다는 건 그 잎들을 타고 그 나무를 보고 있는 내게도 바람이 전해져 오리라는 걸 상징하기도 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단한 성취, 인정받는 직업, 많은 재산과 같은 것만이 '퍼펙트 데이즈'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좁은 이층 집에서 살지만 '히라야마'에게는 문화예술적 취향이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윌리엄 포크너 등의 영미 문학을 읽고 매주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현상해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며 화장실에 이름 모를 누군가 노트 한 페이지를 찢어 그린 작은 오목 놀이에 다음 수를 채워 그리는 사람. 서두에 언급한 '코모레비'라는 단어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로 언급되는데 이는 곧 어떤 나날에도 '지금'에 충실한 삶이 우리에게 매일의 행복을 누적해 준다는 암시다. 순간이 지나가버리면 그 나뭇잎 뒤로 비치는 햇살의 빛깔이 조금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뜨거운 늦여름, 땀을 식히고 목을 축이고 나면 아직 지지 않은 해를 올려다볼 시간이 매일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