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185쪽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지금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맞지 않거나 해서 어디론가 훌쩍 길게 혹은 아주 떠나는 상상을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해보게 되지만 결국 '떠나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의 해답이 되어주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경계 내지 체계 안에서 ('그럼에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을 지키며, 현재의 삶에서 무엇이 내 행복을 증진할 수 있을지 숙고해 보는 것.
영화 <한국이 싫어서>(2023)는 청년 계층의 문제 내지 한국 사회의 구조적 화두에 대한 장강명 작가 특유의 (상세하고 구체적인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하였을) 예리하고 신랄한 서술을 능히 담아내는 각색은 아니지만 납득할 만한 방식과 작법으로 보편적인 화두에 다가간다. (원작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였던 반면) 뉴질랜드에서 살면 반드시 '한국'에서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계나'(고아성)가 살아가는 일련의 일상은 상당 부분 그 질문에 "아니오"라 답할 만한 양상으로 펼쳐진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그렇지만 "예"일 만한 부분도 분명 어떤 면에서는 있을 수 있고 그건 사회문화적 환경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직업과 마음가짐 등 다양한 곳에서 기인한다. 그 전반을 아우르는 서술과 전개가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에 담긴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장강명, 앞의 책, 160쪽) 결국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미래'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이 싫어서>에는 계나에게 여러 가지 방식의 미래를 부여하려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누군가로부터의 제안이나 상황/환경 변화보다 계나 스스로의 선택에 끝내 무게를 두려 한다. 환경에 굴하지 않고 불확실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계나는 결심하고 관객을 그것을 저마다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원작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한국이 싫어서>가 그래서 동시대에도 여전히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상영관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