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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0. 2017

비판 없는 비난들의 극단화를 바라보며

<군함도>(2017), 류승완

<덩케르크>의 N차 관람을 이야기 하며 새로 개봉 준비 중인 다른 영화의 자료들을 정리하는 며칠간에도 나는 계속 <군함도>를 생각했다. 이 영화는 비난 받아야 할 영화인가. 이 영화는 소재를 착취하는가. 이 영화는 나쁜 영화인가. 모두 그럴 수 있다. 영화가 문화이고 예술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감상과 평가의 가치 역시 절대적이고 객관적이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 그것을 '문화'로 만든다. 한데 '그럴 수 있는' 것과 '그래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본적으로 나는 어떤 소재를 상업영화에서 다루지 않아야 한다거나, 특정한 방향으로만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신성시 되어야 하는 소재는 없으며, 아픈 역사가 일종의 판타지로서의 탈출 서사로 쓰였다는 것이 그 자체로는 연출자의 역사관을 조금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탈출(+액션)과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로서 역사적 사건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미 리뷰에서 기술했으나 <군함도>의 인물과 서사는 '그 때 그 곳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고유한 구조와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징용자를 전시하거나 착취하는 쪽도 아니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 역시 대부분 숲이 아닌 나무를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인물의 복장, 소품 같은 것들. 이 영화가 명확하게 밝힌 바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옮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기록물이 아니라 창작물인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이는 그 전제부터가 빈약하다. (<명량>이나 <암살>과 같은 영화에 있어서는 왜 그런 '왜곡' 논란이 지금처럼 불거지지 않았을까. 소재와 성격, 그리고 블록버스터라는 외양 면에서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인데 말이다.)


<군함도> 스틸


개봉을 앞둔 영화 <청년경찰>에 대해 영화 속에서 여성을 납치하는 등의 소재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물론 주인공은 범죄자가 아니라 경찰대 학생이다) 여성혐오의 프레임을 적용하는 일부 반응을 보았다. 어떤 영화에 관하여 "주인공인 남성 캐릭터의 행동 동기에 여성 캐릭터가 기능적으로 전시되거나 소비되었다"는 시각은 합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특정 장면에서 카메라가 인물을 담는 모습이나 서사 전개의 방식과 같은 근거를 제기한다면 이는 소비적인 논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소재나 사건, 배경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그 영화에 대해 어떤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역사든 범죄든 누구든. 영화가 어떤 대상을 다루는 것과 그 영화가 그 대상에 대해 특정한 관점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결정 짓는 것이 작품 전반에 사용된 촬영, 음악, 미술, 편집, 연기, 각본, 연출 등의 영화적 요소이나, 최근 영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대부분 소재 자체에 대한 것만 보이고 그 이상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것에 기어이 답을 만들거나 강요하려는 태도까지 엿보인다.


애초 영화를 보지 않고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비판하는 이들이 온라인상에 다수인 현실 하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허황된 것일 지도 모른다. <연평해전> 때도, <귀향> 때도, 영화의 내적 요소에 대한 비평에 대해 희생자를 모욕한다느니 친일적 시각을 갖고 있다느니 하는 황당한 비난이 제기됐다. (심지어 <은밀하게 위대하게> 때도, 영화에 대한 혹평에 대해 도리어 사람에 대한 비난이 돌아왔다.) 그들은 박제된 틀 안에 역사를 가두고 그에 대한 다른 시각과 담론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모난 돌을 곱게 보지 않는 문화, 불가침의 영역을 두는 문화는 다양성을 저해한다. 다채롭고 생산적인 화두가 제기되는 것을 막는다. 무엇보다, 창작 자체의 욕구를 꺾어놓는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아 여간해선 재기가 불가능하게 낙인을 찍는 문화와, 가장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라 할 수 있는 영화를 소비하는 태도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불편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 문화적 개방성과, 특정 현상이나 사건을 재단하는 방식의 극단적인 획일화라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나는 집단지성의 힘은 믿지만 집단지성 자체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대중이 '대중'이라는 이유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 스틸


자, 이제 오랜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대해서도 꺼내어 볼 이야기가 많아진다. <택시운전사>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상영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군함도> 때 '2,600개의 스크린 중 80% 이상인 2,200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했다'며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졌던 때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물론 개봉일 스크린 수는 2,200개가 아니라 2,027개였고, 이는 영진위 통계 중 일부 수치를 단순 합산만 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결과다. <군함도>의 개봉일 상영 점유율은 55.1%였다.(10,176회 상영)(당연하게도, 이 영화의 독과점 논란이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택시운전사>의 개봉일 상영횟수는 7,068회, 일요일에는 8,929회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전자의 영화에 비해 적은 수치지만, 다른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의 선택권이 줄어든 것은 매한가지다. 여타의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의 상영횟수 통계를 보면서, 나는 '전반적인 반응이 좋은 영화에 대해서는 스크린 수에 대한 이슈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섣부른 가설을 세우기에 앞서, 콘텐츠와 현상을 바라보는 대중의 태도 자체에 한동안 주목해보기로 했다.


<군함도> 스틸


실은 나는 이번 영화와 관련한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다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에 있어서도 물론이다. 이는 전적으로 특정 단어나 부분만 잘라서 마치 인터뷰이의 역사관인 양 강조하는 매체의 탓이다. 감독은 "조선인이 군함도에서 인권을 유린 당하면서 생활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일본이 어두운 역사까지를 떳떳하게 인정해야 그것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영화 개봉 5개월 전부터 언급한 바 있다. <군함도>의 신과 시퀀스는 하시마 공업소의 거대한 위용과 대조되는 클로즈업 된 실상, 그리고 그곳을 탈출해야만 하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할 뿐 소재를 단지 착취하거나 이용만 하는 작품이 아니다. 역사를 모티브로 한 창작물에 대해 '역사 왜곡'을 언급하는 것 역시 그 전제부터 부족하다. (심지어 '식민사관'을 언급하는 경우도 보았다.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하려 한다 한들,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한국 영화를 대하는 일부(혹은 다수일 지도) 인터넷 매체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와,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부 관객들의 태도와, 영화를 보지 않은 채 무작정 비난을 토해내는 일부 덧글러들의 영향이 크고 작은 만큼 전반적으로 작용한 결과 <군함도>에는 "역사를 착취하면서 스크린을 '독점'하는 '나쁜' 영화"라는 프레임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감독의 영역과 전혀 무관한 일에 있어서까지 감독을 향한 '비난'이 가해지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영화의 완성도나 그에 상응하는 개선점에 대한 논의보다, 현상 자체에 대한 극단적인 재단이 난무하고 있다.


<군함도> 촬영 현장 스틸


처음 하는 얘기는 아니나 소재 자체는 그 소재가 쓰인 영화의 태도를 말하지 않는다. 맥락을 봐야 하며 숲을 봐야 할 일이다. 최근 개봉작들에는 유독 특정 장면 자체나 대사 자체만을 놓고 무턱대고 '젠더 감수성'을 들이대는 경우도 자주 본다. 최소한 나에게는 "착하지 않은 조선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영화가 조선인을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는 명제가 여타의 설명과 증명이 필요 없는 확실한 명제로 자리잡고 있지만(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다.), 생각은 고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 되거나 감화되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설령 내가 <덩케르크>를 네 번 봤다고 해서 그걸 '극장에서 네 번 봐야 하는 작품'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그저 쓰고 싶은 글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꾸준히 풀어내는 것만이 나의 일인 것 같다.


<군함도>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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