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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23. 2018

전부였던 사월의 비

그날은 비가 내렸다

재작년이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가을이었다. 출발점이 달랐던 두 사람은 그날, 다시 만났다. 대답할 수 있는 것보다 질문으로만 남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함께 답을 찾아보고자 했기 때문에. 다시 눈물을 마주 흘릴 시간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걸었던 길을 그래도 다시, 같이 걸어보기로 했다. 몇 번의 계절을 보내는 동안 그는 여전히 서툴렀다. 간단히 정의하거나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모르지 않았지만, 함께했던 질문들은 조금씩 스스로에게 향했다. 그럴수록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했지만, 말보다 글이 더 익숙했던 그는 많은 생각들을 일일이 털어놓지 못했다.


단지 애정이라는 마음만으로 충분한 것이었다면. 사랑만으로 사랑 외의 것들을 보듬고 해결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그는 생각했다. 기약 없이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자신만의 시간이 지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시간도 함께였다. 타인의 시간을 스스로 계속 덧없이 붙잡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언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가는 동안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지닌 마음의 그릇이 결국 그 정도였을지도 몰랐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 여겼던 재작년 그날 광화문에서의 하루처럼, 두 사람은 지나 보낸 계절 이후 다시 같은 장소에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비가 내렸다는 것이었다. 둘은 우산을 같이 썼다. 컵에 담긴 얼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그는 가끔씩 고개를 떨군 채 테이블을 바라봤다. 전날 하고 싶었던 말을 이미 한 탓이기도 했지만, 더 해야 할 말들도 있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봄이었다. 카페를 나와서도 두 사람은 한동안 우산을 쓰고 걸었다.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지만 이제는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맡길 수 있는 건 시간뿐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나눴던 말과 시간들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눈물을 숨기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을 그는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마음 같지 않은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한한 것들을 영원 대신 믿어왔기 때문인 걸까, 그는 사랑에 실패했다고 여겼다. 실패에 성공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서점에 갔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점점 더 쏟아지기 시작했다. 봄이었던 계절이 저물어가고 있는 저녁임을 느꼈다. 사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의 일부를 잃었다.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거기 당신이 있었다. 거기에 나도 있었다. 이제는 그때의 내가 없다. 이제는. 어쩌면 이제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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