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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19. 2019

지구가 둥글지 않다는 어떤 맹목적인 믿음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로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원제: 'Behind The Curve')는 'Flat Earther'라 불리는, 지구가 구체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미국의 여러 주를 오가며 취재한 기록이다. 중요한 점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명확하게 밝혀졌기에 단순한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 이 이야기를, 조롱하거나 무시 혹은 논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 중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지하실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빠져 사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가설'(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장의 세부 내용은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이론을 정립하려 하고, 믿음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과 온, 오프라인으로 공동체를 구성한다. 지구에 '만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에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과, 매주 방송을 하며 수 천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 채널부터, 몇 만 명의 팔로워로 이루어진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지구 평면설을 반박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다 그것을 믿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다. 통시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한 일에 대해 사적인 인지 범위 내에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류다. 지구 평면설을 믿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편으로 그 맹목적인 믿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는데,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의 말미에 등장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들(Flat Earther)을 단순히 무시하고 조롱하기만 해서는, 어쩌면 잠재적인 과학자가 될 수도 있는 그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파면당한 전 대통령의 이름을 외치며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라든가, 혹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 길에서 행인을 유혹하는 사이비 단체인들의 모습을 문득 떠올린다.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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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넷플릭스에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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