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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2. 2019

영화와 캐릭터를 동일시하지 않기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기준을 잡을 때 예를 들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람직하지 않고 좋지 않은 인물인데도 좋은 영화가 한 트럭 정도 될 겁니다. 그리고 정반대로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이 너무 선하고 우리 인간사에 꼭 필요한 인물들만 나오는 영화인데도 안 좋은 영화 역시 한 트럭 정도 될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가르는 기준이, 극 중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람직한 인간이냐 아니냐 하고는 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영화 평론가로서 일단 그것을 전제하고 싶고요. (...)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이 전쟁에 참전한 베테랑이다, 라는 사실과 그런 사람이 차후에 범죄를 저지르고 마약을 운반해서 결과적으로 나라에 해악을 미쳤다, 라는 사실은 같은 사람이 과거에 한 일이고 미래에 하게 되는 일이지만 이 두 가지가 인과론적으로 결합된 것은 아니죠. 그런 부분에서 어떤 인물이 한 영화에서 잘못한 모든 것이 있다면 그 잘못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영화 속에서 반박하는 것만이 좋은 영화는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이 영화 속의 인물이 좋은 인물이냐 나쁜 인물이냐, 저는 나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좋아서 한 것이거든요. (...)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얼'이 굳이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을 이야기하자면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좋고 나쁨이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고, 그랬을 때 어떤 인물에게 입체적으로 그 사람의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는 수많은 부분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을, 영화가 그 사람의 나쁜 부분을 모두 반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영화의 결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3월 6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글쓰기 클래스를 하면서 마지막 시간에는 늘, 나무 자체보다는 언제나 숲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둘 다 잡을 수 없다면 숲을 먼저 택해야 한다고 믿는 쪽이기도 하다.) 영화가 어떤 현상이나 사건, 인물을 다룰 때 그것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는 영화가 그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라스트 미션>(The Mule, 2018)의 GV(이동진 평론가, 이다혜 기자)에서 한 관객의 질문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답변 중 일부를, 같은 흐름에서 전적으로 공감했다. (영화 <쓰리 빌보드>(2017)를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바로 이 점을 완벽하게 입체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단순하게 묘사한 글을 읽으면 결론이 되게 단순하고 명료하게 나오죠. 그 결론을 복잡다단한 현실에 적용하면 그게 극단주의가 되죠."라는 장강명 작가의 [Axt] 22호 인터뷰 중 한 대목을 다시 떠올렸다. 작품과 작가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동시에 완성되어간다는 말은, 작품이 반드시 작가의 생각과 태도를 대변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될 수 없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일에 대해서는 단순하고 명료해지기를 강요할 수 없다.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어떤 의미나 가치가 있는지를 짚어내거나 분석하는 건 문학을 읽고 사유하는 일과, 나아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조금 더 예민하게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과 다르지 않을 텐데, 며칠 전의 영화일기에서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대하는 사적인 기준에 대해 끼적거리기는 했음에도 나는 적어도 여기에 대해서 이분법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자신이 대답을 정해놓는 영화보다 질문을 관객에게 남기는 영화가 더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바로 그 질문을 남기는 영화란, 복잡해야만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애써 단순화, 이분화시키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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