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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3. 2019

나만 알고 싶지만 공유하고 싶은 곳이 있다

책방 이야기, 혹은 독서 기록들

그간의 책에 대한 기록들을 살피다 보니 금세 몇 달 치의 생각들이 모아진다. 연남동의 작은 책방, '서점, 리스본'에서 매달 운영되는 자율독서 모임 '리스본 독서실'에 작년 11월부터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매번 시간이 허락된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면서, 2018년 11월부터 지금, 2019년 3월까지. 그간의 기록을 하나의 글로 갈무리해두고 싶었다.



11월, 아직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오던 때

여러모로 지쳐 있었던 11월을 그럼에도 잘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 중 하나는 [서점, 리스본]이었다. 매주 각각 김소연의 『시옷의 세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곁에 두었고, 매 시간 여러 권의 책을 추천받거나 감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에서의 낯설고도 친근한 자극과 그로부터 전해져 오고 가는 위안들이 매주를 기다려지게 했다. 저녁을 잊은 채 활자에 골몰했고 이야기를 나눴으며 음악이 곁에 있었다. 저마다의 책 취향, 같은 책에 대한 다른 생각, 같은 작가에 관한 여러 느낌, 고유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비슷한 다름들, 무엇보다 고요하게 각자의 책에 잠겨 있는 시간들이 주는 소중함은 한동안 책 모임을 쉬었던 터라 오랜만에 다가온 것이었다. 함께 있지만 누군가에게 잘 소개하거나 포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책을 각자의 리듬으로 읽는 것이 주가 되는 시간.


어차피 오래 찾을 공간이고 다음 달에도 방문할 곳인데도 [리스본 독서실]의 11월이 끝나가는 것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밤. 집에 오면서 허은실 작가님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사이가 좋다'란 말은 단지 서로 정답고 친하다는 뜻만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마련할 줄 아는 관계'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태양과의 절묘한 거리 때문에 지구에 꽃이 피는 것처럼."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에서) 참 사이좋은 공간. 포근해지는 공간. 김소연 시인의 책에서 채집한 말들을 잠시 떠올리며 비슷하게 활용해보자면, 추운데 춥지 않았다거나, 아쉬운데 좋았다는 표현은 가능한 표현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새로 나온 나희덕 시집과, 추천 받은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를 손에 들었다. (2018.11.24.)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의 한 페이지, 지하철에서


"영어를 쓰면 독일어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은 세계에서 특정한 나라의 특정한 계층에 속한다. 또 영어로 번역한 문학도 문학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영어를 안다고 해도 세계의 우수한 문학을 다 읽지는 못한다. 이 사람만 존재하면 다른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도 각각의 역사와 특성이 있는 다수의 언어가 공존하는 데 의미가 있다." (7쪽)


"대화는 '나는 나, 당신은 당신'처럼 서로 성채를 지킨 채 상대의 말을 참고 듣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는 이야기가 평행 상태로 진행될 뿐이고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접점이 생기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과 나의 입장을 몇 번이고 오가다 보면 점차 전체 상이 보인다. 다시 말해 엑소포니는 어떤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번 이동하고 끝나는 운동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정신을 뜻한다." (11쪽)


"나는 경계를 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경계의 주민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계를 실감할 수 있는 그 망설임의 순간에 언어 이상의 중요한 무언가를 느낀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얕은 영어로 하는 따분한 비즈니스 토크가 세계를 뒤덮으면 참 시시할 것이다. 나는 영어를 험담하고 싶지도 않고 프랑스어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장소성이, 농밀한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고 싶다고 느낀다." (55쪽)


"어쩌면 젠더는 '성性'보다 '류流'에 가까울 수 있다. '성'은 태어나며 가진 성질이나 숙명을 가리키지만 '류'는 '이런 식으로 삽니다' 같은 행동방식이다. 내키지 않으면 물에 '흘려보내流' 잊어도 된다.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배워서 그런 방식으로 삽니다' 또는 '그래도 역시 그런 방식은 재미없어서 최근엔 다른 식으로 삽니다'처럼, 작품의 특징이 여류가 아니라 여류의 인간이 쓴 작품을 '여류문학'이라고 하면 된다. 여자라서 타고난 성질이나 숙명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성'이란 글자는 진의가 약간 수상하다." (112쪽)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에서, 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


우리말에 정확히 특정한 단어가 없는 'Exophony'는 넓은 뜻으로는 모어 바깥으로 나간 상태 일반을 가리키며, 모어가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쓰는 등의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을 주로 말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건너가 독일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30년 넘게 독일에 거주하면서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을 다니며 다문화를 겪은 일본인이 쓴,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와 그 경계들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에 대한 관찰기가 담긴 에세이. 언어를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그 언어 자체에 머무르거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나아가 나의 것이 아닌 것과의 상호 작용을 '대화'이자 '모험'이라고 여길 수 있는 저자의 개방적이면서도 성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태도와 시선에 겸허해지는 책. 올해 읽은 올해 출간된 책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다. 언어에 있어 사람들이 흔히 신경 쓰는, 유창하고 서투른 정도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에 정확히 공감했고,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이 흔들리는 일은 반드시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안과 불쾌함은 결국에는 밝은 해방감으로 변모할 것이다"(6쪽)라는 문장을 오래 기억했다. (2018.12.08.)


작가님, 혹은 정서점 님의 책 사인도 받았고


올 하반기에 정말 잘한 일이라 스스로도 말할 수 있는 일, 오직 그곳에만 있는, 그곳이어서만 가능한 작은 책방들에 걸음한 것이다. '서점, 리스본'이 그렇고 '관객의 취향', '위트 앤 시니컬', '생산적 헛소리' 등이 그렇다. 서점, 리스본을 말하자면 홍대입구역에 올 일이 있어도 합정역에 내려 걸어갈 만큼 이 동네의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 내가 매달 세 번의 금요일을 기다릴 만큼이게 된 곳. 경의선숲길을 걷는 일이 조금 좋아지게 된 곳. 시작은 허수경 시인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추모 낭독회였고, 11월과 12월 두 달 간 '리스본 독서실'을 함께했다. 공간이 주는 온기와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깊이 누리며, 내년에도 오직 그곳이어서만 가능한 일들을 함께해야지. 서점 리스본 12월 독서실을 마치며. 공간이 바로 그 공간으로 존재하려면 사람과 사람이 머무름이 있어야만 하므로, 그러니 공간에게도 사람인 양 말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거기 있어줘서 고마워요, 같은 것. (2018.12.22.)



어느새 눈이 덮이고


'리스본 독서실'에 11월 이후 계속 참여하는 건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일들의 균형을 위해서겠다. 한 달에 허락된 세 번의 금요일의 이 시간이 그 자체로 즐겁고 소중해졌기도 하고. 오늘 읽고 소개한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서 작가는 영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로 "두 언어 사이의 거대한 거리를 날카롭게 실감"하기 위해서라는 언급을 한다. 익숙한 말 대신 완전하지 않은 외국어를 쓰는 행위가 작가로서의 삶과 사고에 팽팽하고 매혹적인 긴장과 자극을 주었다는 것.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책을 읽는 일과, 저마다의 책들을 소개하고 좋았던 대목이나 책에 대한 인상을 나누는 일 역시도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가능한 흥미로운 자극일 뿐 아니라 또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읽고 싶은 책들을 한아름 안고 조금 덜 추워진 날씨를 따라 걸어가는 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김연수) 혼자의 나는 언제나 이 세상보다 작다. (2019.01.11.)


늘 익숙한 포토존(?)에서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에서)


삶은 혼자의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 순간 타인과의 관계들로 인해 나날이 가꾸어지고 정의되어간다. 기차에서 읽은 이다혜 기자님의 책에서도, 저녁에 읽은 김진영 선생님의 책에서도, 그리고 감상을 전해 들은 김영민 교수님의 책에서도 어쩌면 비슷한 주제를 담은 대목이 있었다. 쓰는 사람이 읽어야만 하는 이유와, 말하는 사람이 들어야만 하는 이유.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라는 선생님의 문장에 하나를 더 추가해본다면 이런 말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타인에게 성실할 필요가 있겠다, 라고. "Our lives are not our own..."으로 시작하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영화 한 편을 생각했다. 오늘의 재생목록에 OST가 포함돼 있던 작품이기도 하다. (2019.01.18.)


읽은 것과 읽을 것, 모두 쌓여가고


전에는 책의 읽은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고 바로 정리하려 애썼는데 요즘에는 그냥 읽는 행위와 그 과정 자체가 좋다. 읽고 나서 또 꺼내면 되고,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맥락과 흐름을 기억하면 되고. (물론 꼭 기억하고 싶거나 공유하고 싶은 대목이 있으면 그때 노트를 뒤적이거나 그 책을 다시 꺼낸다) 많은 글쓰기 책에서 반드시 빠뜨리지 않는 건, 쓰기에 앞서 읽고 듣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는 스스로의 감각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다. 혐오와 폭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읽고 돌이키며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부터,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함께 되어가는 것.


내 세계를 공고하게 다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타자와 자신 밖으로부터의 영향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을 모험하고 여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한 달에 세 번,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을 읽는 금요일 저녁 이 시간이 없으면 어느덧 허전해지고요, 리스본 독서실은 그래서 2월 공지도 또 기다릴 수밖에 없겠고요, 읽고 싶은 책들이 또 몇 권 생기고요, 혼자서만 읽으면 느끼고 깨달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여럿의 열리고 선한 마음과 공감 덕에 또 얻고요.) 금요일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1월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그러니 2월에는 2월의 이야기가 찾아오겠다. (2019.01.25.)



읽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기록하기


그날은 무슨 책을 가져가 읽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한 달에 세 번 할 수 있게 해주는 곳. 2월에도 걸음과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겠고. (2019.02.08.)


욕심을 조금 내어 늘 여러 권의 책이 가방에, 손에 들려 있다.


늘 말보다는 글이 앞서고 단문보다 장문을 편히 여기며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서는 이야기가 더 길어지게 된다. 그래서, 보고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일들의 균형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도 오래 지금처럼,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끼고 좋아하는 공간이 가까이 오래 머무를 수 있다면 더 좋겠고. 올해도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다음 계절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 있을까.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2019.02.22.)




*이 기록은 3월에도 진행 중이다. 3월 첫 '리스본 독서실'에서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은 이미 브런치에도 (링크)를 통해 남긴 바 있다. 이곳에서의 읽고 쓰는 일들은 한동안 계속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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